안전진단 강화 단지 매수 문의 급감…거래도 올스톱
"1억 깎아주겠다" 막바지 양도세 회피 매물 등장…풍선효과도 미미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김연정 기자 = "한동안 없던 매물이 이달부터 늘기 시작했는데 거래는 잘 안 되네요. 3월 말까지 잔금을 치르는 조건으로 최근 고점보다 1억원 이상 싼 급매물도 있는데 매수자들이 관망하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A중개업소)
"가격이 너무 올라서인지 설 전부터 매수문의가 확 줄었어요. 그동안 새 아파트라서 매물은 없고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었는데 요즘 들어 분위기가 주춤합니다." (서울 마포구 아현동의 B중개업소)
서울 아파트 시장에 관망세가 확산하고 있다. 설 연휴 전부터 가격 상승에 따른 피로감으로 매수세가 주춤하기 시작하더니 지난주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방침 발표가 찬물을 끼얹은 모양새다.
안전진단 강화의 타격이 된 아파트에는 매수 문의가 뚝 끊기면서 거래도 올스톱됐다. 이미 안전진단을 통과한 재건축 단지나 새 아파트 등에도 문의 전화가 크게 줄었다.
4월 청약조정지역 내 양도소득세 중과를 앞두고 고점에서 1억원 이상 빠진 막바지 시한부 급매물도 나와 있지만 소화는 더딘 분위기다.
전문가들은 25일 "오른 가격에 대한 매수자들의 부담감이 커지던 시점에 정부의 시장 압박이 계속되면서 일단 숨고르기가 진행 중"이라며 "단기 조정을 받을지, 하락 징후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 안전진단 타격 목동·상계·송파 등 "매수세 뚝"
지난 20일 발표된 정부의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조치로 아직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단지들은 매수문의가 끊겼다. 당장 매물이 크게 늘진 않았지만 일부 2천만∼3천만원 싼 다주택자의 급매물도 나오고 있다.
양천구 목동 신시가지 7단지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7단지는 가장 인기단지여서 안전진단 때문에 싸게 나온 매물은 아직 없다"며 "매수자들은 당분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고 매도자들도 일단 상황을 저울질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신시가지에서 가장 가격이 싼 11단지 74㎡는 최근 3월 말 잔금 조건으로 시세(7억원)보다 3천만원 낮은 6억7천만원에 다주택자의 급매물이 나왔지만 거래는 안되고 있다.
목동 11단지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안전진단과 무관하게 양도세 중과를 피하려고 설 전부터 나왔던 매물인데 살 사람이 없다"며 "안전진단 걱정에 시세대로 나오는 매물이 몇 개 늘긴 했는데 매수문의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송파구 문정동 올림픽훼밀리 타운과 올림픽 선수기자촌 아파트 단지에도 관망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일부 시세보다 2천만∼3천만원 가량 싼 매물이 등장했다.
문정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어차피 재건축 추진 논의가 있었던 단지는 아니지만 안전진단 강화로 일부 실망 매물이 나오긴 한다"며 "사정이 급한 다주택자의 매물은 3천만원 정도 가격 조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노원구 상계동 주공 아파트 단지도 거래가 뚝 끊겼다.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재건축 연한이 다가오다 보니 미래의 재건축을 바라보고 매수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번 조치로 그런 수요를 찾기 어렵다"며 "대출 때문에 갈아타기 수요도 발이 묶여 거래가 힘들다"고 말했다.
지난 20일과 21일 각각 재건축 안전진단 용역업체 입찰 공고가 나간 강동구 명일동 신동아아파와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에도 매수세가 선뜻 붙지 않는다. 강화되는 안전진단 적용 여부가 불투명해 좀 더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명일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설 지나고나서 매물이 나왔는데 기존 손님들은 한발짝 뒤로 물러서며 매수를 꺼린다"며 "가격 조정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 재건축 단지 호가 하락, 강북도 문의 급감…풍선효과 '글쎄'
이미 재건축을 추진중인 단지에도 풍선효과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등 기존 악재들로 인해 최근 들어 호가가 하락했다. 다만 설 연휴가 지나면서 3월 말 잔금 조건으로 나온 다주택자들의 급매물은 조금씩 팔려나가는 분위기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는 119㎡는 지난주 19억5천만∼19억7천만원에 거래가 성사됐다. 지난달 20억1천만원까지 팔린 것에 비하면 5천만∼6천만원 하락한 금액이다.
잠실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가격이 단기에 너무 오른데다 재건축 부담금 논란도 있어서인지 매수세가 활발하지 않다"며 "고점에서 떨어진 급매물만 일부 거래가 됐다"고 말했다.
서초구 반포동 일대 재건축 추진 단지는 '재건축 부담금 폭탄'에 대한 걱정으로 가격이 하락세다. 반포 주공1단지, 경남 3차 등 관리처분인가 검증을 받고 있는 고가 재건축 단지들의 호가가 1억∼2억원 이상 떨어졌지만 거래가 잘 안 된다.
심지어 초과이익환수 규제를 사실상 벗어난 강남구 개포동 일대 재건축 단지들의 중개업소들도 "손님이 딱 끊겼다"고 말했다.
개포동 주공1단지의 중개업소 대표는 "매수·매도자들의 관망세가 길어지면서 호가가 1천만원 정도 내렸는데 거래는 뜸하다"며 "이주 날짜도 4월로 잡혔는데 이번 재건축 안전진단 강화 등 정부 규제에 따른 반사이익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일부 다주택자들은 4월 시행되는 양도소득세 중과 회피 목적으로 시세보다 1억원 이상 싸게 급매물을 내놓고 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115㎡의 경우 지난달 최고 18억원까지 거래됐으나 현재 17억원 이하에도 살 수 있다.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잔금 지급일이 3월 말까지로 시한이 빠듯하다 보니 1억원 이상 싸게라도 정리하겠다는 것"이라며 "문제는 매수자들이 가격 조정을 우려해 선뜻 나서질 않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단지는 고점 대비 2억원가량 싼 급매물이 나오기도 했다. 압구정 현대 14차 99㎡는 27억원을 호가하던 것이 최근 25억원에 팔렸고, 역시 현대 13차 119㎡는 26억5천만원에 거래됐다.
압구정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초과이익부담금 폭탄 우려에 한동안 거래가 안됐는데 압구정 현대는 안전진단을 모두 통과했고 25일 압구정 3구역의 재건축 추진위원장 선거 영향도 있어서 그런지 지난주 급매물들이 팔렸다"며 "다만 거래가 됐지만 가격이 오르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규제 무풍지대인 강북지역 인기 단지에도 요즘 매수문의가 크게 줄면서 풍선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마포구 아현동의 중개업소 사장은 "설 이후 매수문의가 급격하게 줄어서 중개업소끼리 거래 침체를 걱정하는 정도"라며 "안전진단 강화 등에 대한 반사이익은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성동구 옥수동의 중개업소 대표도 "매물도 많지 않지만 매수세가 확실히 주춤해졌다"며 "가격이 너무 오르다 보니 가격 부담 때문에 고민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시장의 소강상태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다주택자들의 급매물이 상당수 정리됐지만 3월 한 달 시간이 남은 만큼 막바지 양도세 중과 회피 매물이 더 나올 수도 있어서다. 정부의 강력한 규제 대책과 보유세 개편 논의, 금리 인상, 외교 안보 문제 등 악재가 널려 있어 눈치보기 장세도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집값이 본격적으로 하락할 것인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4월 이후 양도세가 중과가 시행되면 '매물 잠김' 현상이 심화될 것"이라며 "높은 시세에서 가격이 오르지도 내리지도 않는 고원현상이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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