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시간 컬링 체험, 친구·동생·동생친구에 전파…끈끈한 팀워크
(강릉=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한국 컬링 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은 의성여고 체육 시간에 싹을 텄다.
경북 의성여고 1학년 시절의 김은정은 체육 시간에 '체험 활동'으로 컬링을 처음 접했다.
잠깐의 경험이었지만 김은정은 컬링에 매료됐다.
이후 김은정은 방과 후 활동 수업 중 하나로 컬링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김은정은 주저 없이 컬링팀에 들어갔다.
김은정은 컬링 전파에 나섰다. 친구 김영미에게 함께 컬링을 하자고 권유했다. 김영미는 김은정을 따라 컬링을 시작했다.
김영미에게는 세 살 터울 동생이 있었다.
김경애는 의성여중 2학년 때 언니가 컬링을 재밌게 하는 모습을 보다가 덩달아 컬링에 흥미를 느꼈다.
김경애는 컬링을 같이 할 친구들을 모았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김선영이 김경애의 권유를 받아들여 함께 컬링의 길을 따라갔다.
모두 평범한 소녀들이었다. 틈이 나면 가족이 하는 복숭아, 자두, 마늘 농장에서 일손을 보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대가족 속에서 어른을 공경하며 사는 착한 딸이자 손녀였다.
김영미, 김경애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스스로 채우는 어려움도 극복했다. 김영미는 이모 같은 리더십, 김경애는 여장부 같은 리더십을 키워나가며 어린 나이에 가장 역할을 했다.
이들이 학교 끝나고 달려간 곳은 의성컬링훈련원이었다.
인구 5만 명의 소도시 의성에 2006년 생긴 한국 최초·유일의 컬링 전용 경기장이다.
의성컬링훈련원은 당시 정부의 스포츠클럽 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지역 학교의 도움을 받아 컬링을 배울 학생을 모집했다.
여러 학생이 컬링에 관심을 보였지만, 김은정, 김영미, 김경애, 김선영은 방과 후가 아닌 졸업 후에도 끝까지 컬링을 놓지 않았고, 지역 실업팀인 경북체육회에 들어가 전문 선수가 됐다.
김은정은 국가대표 여자컬링 대표팀의 주장인 스킵이 됐고, 김영미는 가장 먼저 스톤을 던지는 리드가 됐다.
오랜 친구인 만큼 김영미는 "영미∼", "영미!!", "영미, 영미!" 등 김은정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의 톤으로 스위핑 지시를 알아듣는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김경애는 팀의 살림꾼인 바이스스킵 겸 서드를 맡았고, 김선영은 작전 수행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세컨드가 됐다.
이들은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서 합숙하며 올림픽 메달의 꿈을 키웠다.
서로 연애사까지 속속들이 안다는 이들은 흔히 말하는 '혈연, 지연, 학연'을 넘어 하나의 꿈을 공유하는 공동체가 됐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는 마지막 경기에서 패해 태극마크를 놓쳤지만, 이들은 절치부심 2018 평창동계올림픽만을 기다렸다.
새 식구도 맞았다. 고교 최고 유망주인 경기도 송현고 출신 김초희가 경북체육회에 새로 입단했다.
김초희는 비록 고향이 의성은 아니지만, 똑같이 합숙 생활을 하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도맡아 하면서 팀의 미래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다섯 선수와 김민정 감독까지 모두 성이 김 씨여서 '팀 킴'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하나로 뭉쳤다.
그리고 마침내 2018년, 한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동계올림픽 대회에서 이들은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5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여자컬링 마지막 경기 금메달 결정전에서 스웨덴에 패해 정상의 자리를 내줬지만, 올림픽 기간 내내 컬링 열풍을 주도한 선수들은 바로 팀 킴이었다.
팀 킴의 간절한 꿈은 '마늘'로 유명한 한국의 작은 도시를 단번에 세계적인 컬링 중심지로 거듭나게 했다.
의성에 하나 있는 컬링장에서 뭉친 '팀 킴'은 한국에 올림픽 사상 첫 컬링 메달을 선사하는 기적을 만들어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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