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인기 설움과 지원 부족, 자체 노력으로 극복
"자신감 있었기에 강한 불만과 비판 제기했던 것"
(강릉=연합뉴스) 최인영 기자 = "저기 메달이 눈앞에 보이는데!"
김민정 여자컬링 감독은 지난해 11월 강릉컬링센터에서 미디어데이 행사를 열고 '지원 부족' 실태를 성토하며 답답한 마음에 이런 말을 내뱉었다.
국가대표로서 받을 수 있는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강한 불만을 제기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조금만 더 도움을 받으면 2018 평창동계올림픽 메달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자신감도 묻어난 말이었다.
한국 컬링의 역사는 짧다.
1988년 창립된 대한컬링경기연맹의 전신 한국컬링클럽은 1994년 대한컬링경기연맹으로 거듭났다.
제대로 된 컬링장은 12년 후에야 생겼다. 2006년 경북 의성에 컬링 전용 경기장인 의성컬링훈련원이 건립됐다. 이전까지 선수들은 빙질이 다른 빙상장에서 컬링을 했다.
오는 3월 경기도 의정부에 국제규격 컬링장이 개장하기 전까지 의성컬링훈련원은 국내 유일의 컬링장이다.
올림픽 역사는 더욱 짧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여자컬링에 처음으로 한국 대표팀이 출전했다. 3승 6패로 10개 팀 중 8위를 차지했는데 이는 '깜짝 선전'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아무리 이번 올림픽이 한국에서 열린다고 해도, 이런 환경에서 컬링 메달이 나올 것으로 예상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여자컬링 대표팀은 25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은메달이라는 값진 성과로 새역사를 썼다.
대표팀은 무관심과 싸웠다.
국내외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도 여전히 컬링 자체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한컬링경기연맹마저 파행 운영으로 지난해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되면서 '식물 상태'가 됐다.
정부가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동계 스포츠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지만, 대표팀은 연맹과 갈등하다가 속앓이 끝에 기대하기를 포기했다.
홈 이점을 살리면서 관중 경험이 부족한 점을 채울 수 있도록 '올림픽 경기장인 강릉컬링센터에서 관중이 들어선 채로 다른 나라 팀을 초청해 경기를 열어달라'는 간절한 요청도 이뤄지지 못했다.
공개적인 불만 제기에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했던 대표팀은 굴하지 않고 소속팀인 경북체육회에서 '자체 프로그램'을 마련해 올림픽을 준비했다.
대표팀은 국제대회 출전으로 세계적인 팀과 겨루고, 미술 심리치료 등 다양한 멘탈 강화 훈련을 도입했고, 3년 전부터 캐나다 출신 피터 갤런트, 밥 어셀 코치를 전담 외국인 코치로 기용해 기량을 끌어올렸다.
그 성과로 평창동계올림픽 컬링 3종목(남자, 여자, 믹스더블) 태극마크는 모두 경북체육회가 가져갔다.
올림픽을 앞두고는 소치 동계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라이언 프라이(캐나다), 30년 넘는 경력의 베테랑 선수인 짐 코터(캐나다)를 임시 코치로 초빙했다.
김민정 감독은 "팀 차원에서 많은 준비를 했다. 우리 조직에서 이만큼 프로그램을 여러 가지 만들어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미디어데이에서 '우리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할 수 있는데, 여건이 안 되니 도와달라고 강하게 말했던 것이었다. 너무 간절했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김 감독은 올림픽 기간에 힘들었던 준비 과정을 언급할 때마다 수차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예선 1, 2위를 하려고 여기에 온 게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준비했는지, 힘든 과정에서 어떻게 지지 않고 이겨냈는지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여자컬링뿐 아니라 남자컬링, 믹스더블 선수들도 경기에서 아쉽게 패하든, 기분 좋은 승리를 하든 "경북체육회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린다"는 말을 꼭 했다.
올림픽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꿈을 노력과 자신감으로 채워나간 대표팀은 끝내 한국 스포츠 사상 최초의 올림픽 컬링 메달이라는 값진 결실을 봤다.
결승에서 스웨덴에 패해 아쉬움이 남을 수는 있으나 대표팀의 은메달은 척박한 한국 컬링 환경에서도 최선의 노력으로 세계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는 희망을 줬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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