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북한의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경의선 육로를 거쳐 25일 방남했다. 북측 고위급대표단의 단장으로 평창동계올림픽 폐회식에 축하사절로 참가하기 위해서다. 김 부위원장은 이날 저녁 폐회식에 참석하고, 사흘간의 방남 기간에 문재인 대통령 예방과 서훈 국가정보원장, 조명균 통일부 장관 등과의 회동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두 달 전만 해도 미국의 제한적 대북 군사공격 실행설이 나돌 만큼 한반도 정세는 위태로웠다. 그 흐름을 바꾼 것은 한미 양국의 연합군사훈련 연기 결단과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 기조가 '평창 이후'까지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패럴림픽은 다음 달 18일 종료된다. 한반도 정세를 '평창 이전'으로 되돌리지 않으려면, 그 어느 때보다 남과 북, 그리고 미국의 진지한 태도와 창의적 발상이 요구된다. 놓쳐서는 안 될 소중한 기회다.
미국은 23일 북한을 겨냥해 역대 최대 규모의 독자제재를 단행했다. 핵 개발 자금 조달 통로로 지목돼온 북한의 해상 무역을 봉쇄하고자 북한과 중국, 싱가포르, 대만 등의 무역회사 27곳, 선박 28척, 개인 1명을 제재 명단에 추가했다. 군사행동을 빼고는 가장 강력한 사실상의 대북 '포괄적 해상차단'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맏딸인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이 문 대통령과 만찬을 한 그 날 이런 조치를 발표해 남북대화 진전과는 별개로 대북 압박은 가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제재에 효과가 없으면 우리는 2단계로 가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일각에선 군사행동을 고려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이에 중국은 모처럼 화해 분위기가 조성된 한반도 정세에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대미 외교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초미의 관심사는 올림픽 폐회식을 전후로 해서 북미 간 접촉이 있을 것인가다. 지금으로선 이방카-김영철 회동은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북한 사람들과 접촉할 계획이 없다"고 공식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무자 차원의 접촉 가능성은 여전히 거론된다. 북한이 고위급대표단에 핵 문제와 대미 외교 담당인 최강일 외무성 부국장과 통역사를 포함한 것은 미국과의 대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다. 또한, 미 대표단에 앨리슨 후커 국가안보회의(NSC) 백악관 한반도 보좌관이 비공식 수행원으로 포함된 것도 그런 관측에 힘을 보태고 있다. 후커 보좌관은, 2014년 11월 억류 미국인 석방차 방북한 제임스 클래퍼 국가정보국(DNI) 국장이 김영철 당시 정찰총국장 등과 협상할 때 수행원으로 참여했다. 현재로선 접촉한다고 해도 의중 탐색 수준에 그치겠지만, 두 나라의 만남 자체가 던지는 상징적 메시지는 크다.
김 부위원장의 방남을 둘러싸고 남·남 갈등이 커지고 있다.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야권은 그의 방남을 저지하고자 이동 경로인 통일대교 남단에서 1박 2일 연좌농성을 벌인데 이어, 26일에는 청계광장에서 '규탄 국민대회'를 열기로 했다. 이들은 김 위원장이 2010년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건의 배후'라고 주장한다. 이에 정부는 북한의 소행은 맞지만 김 부위원장이 주도했다고 단정할 수 없고, 남북관계 개선과 비핵화 문제를 협의하려고 오는 책임자여서 방남 요청을 수용했다고 국민에 양해를 구했다. 관점이 다른 만큼 야당이 정부 결정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 표현 방식은 제1 야당의 품격에 어울려야 한다고 본다. 아울러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남북군사회담에 김 부위원장이 북측 대표로 나왔을 때 한국당의 전신인 새누리당은 문제 삼지 않았다. 이 부분을 여당이 지적했지만 한국당은 이렇다 할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금 더 중요한 것은 김 부위원장의 방남을 계기로 남북대화를 북미 대화로 이어갈 돌파구를 마련하느냐다. 그래야 '평창 이후'에 한반도 정세의 안정적 관리와 평화적 북핵 해법 마련에 매진할 수 있어서다. 이제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답을 내놓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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