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사후 50주년 기념 전집 결정판 출간…연구 권위자 이영준 교수가 엮어
시 '"김일성만세"' 등 7편과 미완성 초고 15편, 포로수용소 시절 산문 등 추가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세계의 그 어느 사람보다도 비참한 사람이 되리라는 나의 욕망과 철학이 나에게 있었다면 그것을 만족시켜 준 것이 이 포로 생활이었다고 생각한다." (김수영 산문 '내가 겪은 포로 생활'의 첫 문장)
김수영(1921∼1968) 시인 사후 50주년을 기념한 '김수영 전집 1·2'(민음사) 결정판을 엮은 이영준 교수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이 문장을 읽어주며 김수영 시인의 철학과 작품 세계를 소개했다. 시인의 거제 포로수용소 수감 전후 사정을 설명해주는 이 글은 이번 전집에 새롭게 추가된 내용이다.
"이 글에는 위대한 영혼을 갖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잘 나타나는데, 위대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가장 비참한 나락에까지 내려가 봐야 한다는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비참함과 위대함의 양극을 조화시키려는 긴장이 작품에 들어오는데, 한국전쟁을 통해 죽음과 처참한 일들을 겪은 뒤 그런 세계가 더욱 깊어졌죠. 이데올로기의 질곡, 막다른 골목에서 어떻게 인간의 자유를 확장시키고 사람들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 것인가 고투했으며, 세상을 속이지 않고 정직하게 글을 써야 한다고 외친 사람입니다."
기존에 시 편과 산문 편 두 권으로 묶여 나온 김수영 전집은 1981년 초판 출간 이후 시 편이 63쇄, 산문 편이 47쇄 중쇄되며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아왔다. 여기에 그동안 발굴된 많은 작품을 추가해 새롭게 정리한 결정판으로 독자들을 만나게 됐다.
이번 전집의 편집을 총괄한 이 교수는 시인의 동생이자 전 현대문학 편집장 김수명 씨가 편집한 1981년판과 2003년판 전집, 이 교수가 2009년 펴낸 '김수영 육필시고 전집', 시인 생전에 발간된 유일한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비롯해 그간 연구자들이 밝혀낸 새로운 사실들을 반영해 정본 확정 작업을 진행했다. 2003년 판본의 크고 작은 오류들을 바로잡고 그동안 공개되지 않은 미발표 시와 미완성 초고 시까지 더해 김수영 작품을 총망라했다.
새로 포함된 시는 2003년 이후 발굴된 '음악', '그것을 위하여는', '태백산맥', '너…세찬 에네르기' 등 4편과 '겨울의 사랑', '연꽃', '"김일성 만세"' 등 미발표 시 3편 등 총 7편으로, 전집 본문에 추가됐다. 또 미완성 초고인 '애(哀)와 낙(樂)', '탁구', '대음악', '승야도', '은배를 닦듯이', '바람'과 제목이 없는 시 아홉 편 등 15편이 부록에 실렸다.
특히 이념적 금기에 맞서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노래한 시 '"김일성 만세"'는 당시 어느 신문·출판·잡지사도 실어주지 않아 발표되지 못하다 2008년 뒤늦게 발굴돼 알려졌고 전집에 처음 실리는 시여서 눈길을 끈다.
"'김일성 만세'/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인정하는 데 있는데//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김일성만세"' 중)
이 교수는 "국가보안법 때문에 다른 사람이라면 도저히 쓸 수 없는 시다. 예술가로서 타협하지 않는 불굴의 기개를,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세상을 상대로 이 분이 못할 말이 없었고, 한국 예술가들의 사표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전집의 산문 편에는 22편의 산문과 21편의 일기, 1편의 편지 등 2003년 개정판 출간 이후 발굴된 글이 추가됐다. 특히 '내가 겪은 포로 생활'과 '나는 이렇게 석방되었다' 등의 산문은 시인이 한국전쟁 중 의용군으로 잡혀갔다 탈출한 뒤 다시 '빨치산'으로 몰려 거제 포로수용소에 끌려가 25개월간 겪은 끔찍한 체험을 들려준다.
또 이번에 추가된 산문 '어머니 없는 아이 하나와', '해운대에 핀 해바라기'는 사창가에 드나든다거나 유부녀와의 연애 등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시인의 가족들이 실제로 그런 일이 없었으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부인해 '콩트'로 분류됐다. 이 교수는 "김수영은 소설을 쓰고 싶어 했고 '소설적 정신'이라는 말을 많이 썼다. 김수영 특유의 위악적인 포즈를 보여주는 창작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김수영은 한국 시인들의 시인이고, 마침표를 찍지 않는 것 등 한국 현대시의 관습을 만드는 데 굉장히 큰 영향력을 미친 사람이다. 현재 한국시의 많은 부분은 김수영에게 빚지고 있다. 시에 일상어를 가져오고 금기인 욕설과 성(性)을 쓰는 등 최초로 한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편으로는 난해했기에 당시 대중에게는 높은 인기가 없었지만, 기묘하게 김수영 시는 해가 갈수록 더 팔리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여전히 젊은 시인들의 친구로 남아있다. 참여시인의 면모와 함께 초월적인 세계와 닿아있는 부분도 돌아봐야 한다. 위대성에 도달한 시인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1980∼90년대 민음사 편집주간으로 일하다 1997년 도미, 김수영 연구로 하버드대학교에서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으로 재직 중이며 하버드대학교 한국학 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영문 문예지 '아잘리아(AZALEA)'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영어권 독자들에게 한국 문학을 소개하고 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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