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기업인 탈세 취재…몰타 기자 피살 4개월 만에 발생
(서울=연합뉴스) 김기성 기자 = 유럽에서 정치권의 부패를 폭로해오던 기자가 또 피살됐다.
동유럽 슬로바키아에서 정치인과 결탁한 기업인들의 탈세를 집중적으로 취재해 오던 20대 언론인이 함께 지내오던 약혼녀와 함께 지난 25일 밤(현지시간) 살해된 채 발견됐다고 가디언 등 유럽언론들이 26일 보도했다.
슬로바키아 인터넷 언론(aktuality.sk)에 정기적으로 기사를 보내던 잔 쿠치악(27)은 여자친구와 함께 수도 브라티슬라바 근교 벨리카마카의 자택에서 각각 가슴과 머리와 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됐다.
여자친구는 몸을 숨기려 시도한 흔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웃은 쿠치악이 피살당한 사실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으며, 1주일째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가족의 요청을 받은 경찰이 현장을 찾았다.
슬로바키아 경찰은 "돌발 사건이 아닌 계획된 살해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쿠치악은 지난해 가을 수도의 고급 아파트 단지와 관련된 탈세 의혹을 보도, 이 아파트 개발업자와 연루 의심을 산 로베르트 칼리낙 내무장관의 사임 요구 시위를 불렀다.
이 기사로 인해 쿠치악은 한 관련 기업인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에 대해 유사한 "거짓 이야기"를 공개할 것이라고 협박받기도 했다. 그러나 쿠치악은 이후 이 협박과 관련해 경찰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쿠치악은 최근에는 슬로바키아에 지원되는 유럽연합(EU) 자금이 이탈리아 마피아로 흘러가고 있다는 의혹을 취재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로베르트 피코 총리를 포함한 슬로바키아 정치권 인사들은 쿠치악의 죽음이 그의 일과 관련이 있다면 "언론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전례 없는 도전"이라고 비난했다.
슬로바키아 정부는 범인을 잡을 수 있도록 단서를 제공하는 사람에게 100만 유로(약 13억 원)를 현상금으로 제시했다.
지난해 10월에는 EU 최소국 몰타 정치인들과 유력인사들의 부패, 범죄조직들의 범법 행위를 가차 없이 폭로해 온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 기자가 자신의 차량에 설치된 폭발물이 터지며 사망했다.
갈리치아 기자는 지난해 4월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회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에 언급된 한 회사 소유주가 조지프 무스카트 총리의 부인이라고 언급해 몰타의 조기 총선을 촉발했다.
쿠치악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뒤 고 갈리치아 기자의 아들인 앤드루는 EU 집행위원회에 단호한 조치가 없으면 어머니와 같은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것이라고 경고했다며 EU의 대응을 비판했다.
유엔은 지난해 11월 '세계 언론인 보호의 날'을 맞아 2017년에만 전 세계에서 언론인 30여 명이 표적 공격으로 살해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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