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지법 "중국 내 북한 이탈주민 지원활동은 정치적 박해 대상"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북한 이탈주민을 제3국으로 도피시키다 중국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뒤 해외로 도피했다가 한국에 입국한 라오스 이중국적 중국인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북한 이탈주민의 국외 탈출을 도와 중국 정부로부터 정치적 박해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중국인에 대한 첫 난민 인정 판결 사례로 알려졌다.
제주지법 행정1부(김진영 부장판사)는 중국인 T씨가 법무부 제주출입국관리소를 상대로 난민 불인정 결정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지난해 12월 13일 T씨의 청구를 인용했다고 27일 밝혔다.
A선교회 목사인 T씨는 2006년께부터 중국 내 탈북자들이 라오스 등으로 출국하는 것을 돕다 2008년 8월 중국 공안에 체포돼 이듬해 법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T씨는 집행유예 선고 직후 또다시 자신에 대한 수배령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중국을 떠나 캄보디아, 라오스 및 태국 등지를 떠돌았다. 그 과정에서 2010년 10월 태국 정부에 난민 신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T씨는 2012년 12월 라오스로 들어가 라오스 국적을 취득했고, 라오스에 체류하는 동안 수시로 중국에서 라오스 국경까지 내려온 북한 이탈민을 태국 등으로 탈출하도록 도왔다. 그러던 중 T씨는 2016년 3월 주라오스 중국대사관 측으로부터 형을 감경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중국으로 돌아가 자수하라는 취지의 연락을 받자 고민 끝에 탈북자 지원 단체의 도움을 받아 한국으로 들어왔다.
T씨는 재판과정에서 "중국 내 북한 이탈민들의 중국 탈출을 돕는 등 중국의 국내법 및 탈북자 정책에 반해 이른바 탈북자 지원활동을 했기에 중국으로 돌아갈 경우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며 제주출입국관리사무소의 난민 지위 불인정 처분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법무부 측은 "T씨는 중국을 떠나 라오스 국적을 취득한 후 오랜 기간에 걸쳐 평온한 생활을 했으므로, T씨에게 박해에 대한 공포가 있다고 볼 수 없고, T씨가 경제적인 이익만을 좇아 생계유지 차원에서 탈북자를 지원하였을 뿐이어서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박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맞섰다.
법무부 측은 "라오스 국적자이기도 해 국적국으로부터 박해를 받는 등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지위에 있다고도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북한이탈주민 지원활동은 단순히 중국의 국내법 위반이 아니라 정치적 박해의 대상이 되는 행위"라며 "T씨가 중국에 돌아갈 경우 불법 월경 조직 혐의로 7년 이상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을 받게 될 수 있어 T씨가 박해에 대한 공포를 가졌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T씨가 경제적이거나 인도적인 동기 등에 의해 자국의 실정법을 위반하는 행위를 했다고 하더라도, 구체적인 사정 여하에 따라서는 문제된 실정법 위반 행위에 자국의 법과 정책을 비판하는 내용의 정치적 의견 또한 반영되었다고 봐야 한다는 판단도 내렸다.
또 T씨가 거짓 신고를 통해 부여받은 라오스 국적은 법률상 효력이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고 보고, T씨의 국적국이 라오스임을 전제로 T씨가 라오스 정부로부터 박해받은 경험이나 박해받을 위험성이 없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한 법무부 처분의 적법성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렵다고도 봤다.
법무부는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T씨 사건은 광주고법에 현재 계류 중인 상태다.
ji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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