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속국 민주주의론'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일본의 젊은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白井聰.41) 교토 세이카(精華)대 교수는 2013년 '영속패전론'(永續敗戰論)에서 일본이 영원한 패전상태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패전의 부인'과 '대미 종속'이라는 두 요소가 영속패전 상태를 떠받들고 있다.
시라이 교수는 신간 '속국민주주의론'(모요사 펴냄)에서는 더 나아가 일본이 미국의 속국이라는 '속국론'을 펼친다.
그는 일본의 리버럴 논객 우치다 다쓰루(內田樹.68)와 대담 형식으로 쓰인 이 책에서 전후 일본의 대미종속적 체제를 파헤친다.
저자들은 2차 대전 후 미국이 냉전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일본을 속국화하는 전략을 취했고 지금까지 이런 속국 상태가 계속되고 심화하고 있다는 주장을 편다.
우치다는 "속국의 입장을 수용하고 '이 시스템에 동의합니다'라고 맹세한 자만이 이 나라(일본)의 지배층을 형성할 수 있으며 그것이 전후 70년이 지난 일본의 지배 구조로 자리잡았다"고 분석한다.
그는 종주국과 속국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일본의 미군기지를 든다. 우치다는 재일미군기지가 지정학적 필요가 아닌 상징적인 의미로 존재한다고 본다. '일본이라는 국가보다 더욱 높은 곳에 일본을 지배하는 치외법권적 존재가 있으며 일본은 속국이고 미국은 종주국'이라는 사실을 일상적으로 일본인에게 전달하고 머릿속에 새겨넣기 위한 장치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시라이 역시 "2차대전 후에는 미국이 일본의 천황이 되어 버렸다"며 '존황양이'(尊皇攘夷. 왕을 높이고 외세를 배격한다)가 아닌 '존미양이'(尊米攘夷)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아베 신조 정권의 행보 역시 속국론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아베 정권이 국민의 반대에도 안보 관련 법안을 밀어붙이는 것을 놓고는 '누가 보아도 국민이 아니라 미국을 향하고 있는 듯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고 말한다.
우라이는 2015년 한일위안부 합의에 대해서도 "한일 양국이 사전에 사무 차원에서 세세한 합의를 한 다음에 인내심을 갖고 결론을 찾았다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다"면서 "누가 보아도 한일 외교당국자가 미국 정부에 불려가 '빨리 끝내란 말이야'라는 호통을 들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시라이는 "일본 측의 최대 문제는 일본이 미국의 속국이라는 현상을 긍정하면서도 그 원인이 패전이라는 사실을 의식 속에서 확실하게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아베 총리가 이를 체현하고 있다고 본다. 대미 종속노선을 따르면서도 '일본이 져서 그렇게 됐다'는 역사 인식을 부정하려 한다는 것. 그는 일본인의 대다수가 아베와 같은 사고를 하는 이상 아베 정권의 지지율이 높은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한다. 344쪽. 1만6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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