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
(서울=연합뉴스) 박수윤 기자 = "나는 세상에서 가장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되어버렸다. 출가가 나로서는 어떤 연유에서일지라도 집안에 대해서는 배반이 아닐 수 없다."
1956년 3월 21일. 한 중학생에게 편지 한 통이 날아들었다. 전남대에 다니다 홀연히 사라졌던 사촌 형 박재철이 보낸 편지였다. 한국전쟁이 끝났지만 박재철은 또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인간 존재에 대한 고뇌가 끊이지 않았다. 그는 결국 가족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집을 떠나 승복을 입었다.
신간 '마음에 따르지 말고 마음의 주인이 되어라'(책읽는섬 펴냄)는 법정 스님(1932∼2010)이 1955년부터 1970년까지 여덟 살 아래 사촌 동생 박성직 씨에게 보내온 50여 편의 편지를 엮은 것이다. 2011년 '마음하는 아우야'라는 제목으로 나왔다가 법정 스님의 입적 8주기(3월 11일)를 앞두고 재출간됐다. 1976년 출간된 역작 '무소유'의 글감이 된 사연과 깨우침이 선명하게 드러남은 물론, 마음을 울리는 문학성이 이미 싹을 보인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법정 스님은 작은아버지 댁에서 자랐다. 그 어려웠던 시절, 작은아버지는 총명했던 조카를 대학까지 보냈다. 출가하며 홀어머니를 비롯한 피붙이들과 인연을 끊어버린 법정 스님은 자신의 매정함을 질책하며 괴로워했다. 사촌 동생에게 편지를 보내 "불쌍한 우리 어머님 아들 노릇을 네가 대신해다오"라고 당부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청년' 박재철은 어느 순간 번민을 끊어낸다. 편지는 가족을 염려하던 애틋한 마음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찬미하고 반복되는 수도 생활에서 건져 올린 깨우침을 전하는 쪽으로 바뀐다.
어느덧 진짜 '승려'가 된 법정 스님은 1959년 3월 10일의 편지에서 이렇게 전한다.
"거짓 없이 너에게 말하마. 형아는 금생뿐이 아니고 세세생생(世世生生) 수도승이 되어 생사해탈의 무상도(無上道)를 이루리라. 하여, 고통 바다에서 헤매는 내 이웃을 건지리로다."
박성직 엮음. 176페이지. 1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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