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 깊이 농수로는 거대한 계곡이고 3m 도로는 '죽음의 광야'죠"
(청주=연합뉴스) 이승민 기자 = 저는 청주시 서원구 성화동에 사는 암컷 두꺼비입니다.
사람 발길이 적은 야산에 살다가 해마다 3월 초순이면 알을 낳기 위해 물가로 내려가야 합니다.
알에서 깨어나 무럭무럭 자라 집으로 올라올 새끼들을 생각하니 벌써 설레네요.
제가 사는 산에서 가장 가까운 저수지는 약 50m 거리에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걸어서 금방 갈 수 있는 거리지만, 몸집이 8∼12㎝밖에 안 되는 저희에게는 매우 험난한 길이고 눈물의 연속이죠.
알을 품고 산기슭을 내려오면 농수로가 길을 막습니다.
폭과 깊이가 각각 1m에 달해 우리에겐 거대한 계곡이나 다름없지요.
한번 빠지면 스스로 나오는 것은 불가능하답니다. 천적에 쉽게 노출되기 때문에 정말 위험한 곳이죠.
물에 휩쓸려 아래로 떠내려가기라도 하면 목숨을 건질 방법이 없습니다.
운 좋게 농수로를 피하면 고생 끝이라고요? 아닙니다. 곧바로 폭 3m짜리 시멘트 도로가 눈 앞에 펼쳐지지요.
하루에도 수십 대의 차가 지나가는 이 길은 저희에게 '죽음의 광야'입니다.
실제로 이 길을 건너다 많은 친구가 차량 바퀴에 깔려 죽었지요. 그중 13마리는 사람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어른 두꺼비라고 빠르지 않습니다. 이 길을 무사히 건너려면 아무리 힘껏 걸어도 5∼10분은 걸립니다.
차가 내 쪽으로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습니다.
목숨을 건 험난한 여정을 거쳐야 비로소 저수지에서 도착해 산란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저희의 눈물 나는 여행길을 도와주시는 고마운 분들이 있어 힘이 납니다.
두꺼비 순찰대라고 들어보셨나요? 농수로에 빠진 저희를 구해주고 길을 안전하게 건널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올해도 이분들의 따뜻한 보살핌으로 무사히 알을 낳고 산으로 돌아갑니다.
귀여운 새끼들을 생각하면 힘이 펄펄 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겁죠. 녀석들은 우리 어른들보다 더 어렵고 힘들게 집에 돌아와야 하니깐요.
크기가 1∼1.5㎝밖에 되지 않아 매년 수백마리씩 로드킬당합니다.
부디 이곳을 지나신다면 제 자식들을 밟지 않도록 땅을 유심히 살펴주세요. 부탁합니다.
[※ 이 기사는 3일 오전 사단법인 두꺼비친구들 청주시 성화동에서 연 '2018 두꺼비순찰대 발대식' 발표 자료, 국립생태원 환경영향평가팀 장민호 박사 취재 내용을 토대로 두꺼비를 의인화해 1인칭 시점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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