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에 인수된 세계 1위 스위스 IDQ 현장취재
2002년 첫 양자난수생성기…"제2의 퀄컴"
(제네바=연합뉴스) 고현실 기자 = 1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시내 낡은 아파트형 공장 2층.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니 왼쪽에 기다란 탁자 5개가 눈에 들어왔다. 탁자 위에는 회로기판처럼 보이는 부품들이 흩어져 있었다.
가까이 보려고 다가가자 직원이 바닥의 노란 선을 가리켰다. 출입금지선이었다.
일반 사무실과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이곳은 양자암호통신 분야 세계 1위 기업 IDQ의 제조 공장 겸 사무실이다.
탁자 위에선 현존 최고의 보안 기술로 꼽히는 양자암호기술의 핵심 부품인 양자난수생성기(QRNG)가 조립되고 있었다. 시계 조립처럼 정밀한 작업이다 보니 먼지나 정전기를 방지하기 해 접근을 막는다는 게 IDQ 직원의 설명이다.
어른 손바닥보다 작은 생성기 하나의 가격은 개당 1천500달러(한화 약 161만원). 하지만 최신 칩이 내장된 버전은 10달러 미만이다. IDQ가 지난해 SK텔레콤과 초소형(5mm×5mm) 양자난수생성기 칩을 개발하며 가격을 크게 낮춘 덕분이다.
2001년 설립된 IDQ는 이듬해 세계 최초로 양자난수생성기를 출시했고, 2006년 세계 최초로 양자키분배(QKD) 서비스를 출시하며 양자암호통신을 선도해왔다. 현재 양자암호통신 분야에서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매출액과 보유 특허 수(약 50개) 등에서 1위에 올라 있다.
IDQ 기술력의 원천은 차로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제네바대다. 공동 설립자 4명 모두 이 학교 연구진 출신이다. 여기에는 '닥터 퀀텀'으로 불리는, 세계적인 석학 니콜라스 지상 교수와 휴고 즈빈덴 교수도 포함됐다.
IDQ는 설립 후 제네바대와 산학 협력 파트너십을 맺고, 제네바대가 개발한 원천기술을 우선 사용할 권리를 확보해 제품에 적용해왔다.
이날도 제네바대 연구실에서는 양자키분배 속도를 올리기 위한 연구가 한창이었다.
즈빈덴 교수는 "현재 IDQ의 상용 장비가 연구용보다 100배 빠르지만, 이곳에서는 1천배 빠르게 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라며 "상용화는 2년 후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SK텔레콤은 IDQ의 기술력과 산학 협력 파트너십에 주목해 최근 이 회사를 인수키로 했다. 상반기 중 약 700억원으로 IDQ 주식 50% 이상을 취득하고, 추가로 SK텔레콤 퀀텀테크랩이 현물 출자를 할 계획이다. 양자암호통신이 네트워크의 안전성을 담보할 핵심 기술이라는 판단에서다.
박진효 ICT기술원장은 "제2의 퀄컴이 될 수 있는 IDQ의 원천 기술에 주목했다"며 "양자암호통신을 전송장비뿐 아니라 디바이스에도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양자암호통신은 자연의 기본 이론인 양자역학에 기반한 암호 기술로, 난수로 정보를 암호화한 뒤 빛 알갱이(광자)에 실어 보낸다. 제3자가 정보를 가로채려 할 경우 송·수신자가 이를 알 수 있어 원천적으로 해킹이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슈퍼컴퓨터를 뛰어넘는 양자컴퓨터 시대가 다가오면서 양자암호기술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현재 OTP나 공인인증서 등에 활용되는 암호체계는 일정한 형태가 있는 유사 난수를 이용하며 앞으로 양자컴퓨터의 연산 능력이 충분히 발달하면 풀릴 가능성이 있다. 기존 암호체계를 활용하는 블록체인도 예외는 아니다.
반면 양자난수생성기가 만드는 난수는 패턴이 없는 순수 난수다. 그만큼 해독하기 어렵다.
니콜라스 지상 교수는 "블록체인의 모든 암호에는 난수가 들어가는데 그 난수의 암호도 취약하다"며 "양자기술이 블록체인을 위해 좋은 난수를 만들 수 있다. 양자컴퓨터가 나오기 전에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IDQ는 양자암호통신 외에 양자센서 분야에 힘을 쏟고 있다.
양자센서는 빛 알갱이 하나로 표현될 만큼 미세한 크기의 양자를 검출하고 감지하는 기술이다. 현재 IDQ의 기술 수준은 60㎞ 떨어진 곳에 켜놓은 촛불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다.
양자센서를 활용하면 자율주행차, 위성, 바이오, 반도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기술 수준을 크게 향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자율주행차의 경우 눈에 해당하는 라이다(Lidar·레이저 레이더) 센서의 정밀도를 끌어올릴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마켓 리서치 미디어에 따르면 세계 양자정보통신 시장은 2025년 26조9천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IDQ는 시장 확대 차원에서 2021년 양자암호키분배를 위한 민간 위성을 발사할 계획이다. 현재 양자 신호의 도달 거리는 최대 80㎞지만, 위성을 이용하면 수천㎞까지 암호키를 공급할 수 있다.
그레고어 리보디 IDQ CEO(최고경영자)는 "양자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2014년 이후 매출이 30% 증가했다"며 "향후 5G와 사물인터넷(IoT)의 안전성을 확보하는 데 양자기술이 많이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SK텔레콤은 양자기술을 보안이 중요한 B2G(공공) 영역에 우선 적용하고, B2B(기업)와 B2C(소비자) 분야로 확장할 계획이다.
한명진 글로벌얼라이언스그룹장은 "2G는 커버리지, 3G와 4G는 데이터 속도와 전송량이 중요했다면 5G는 자율주행과 원격의료 등 안전과 직결되는 서비스가 많은 만큼 보안이 중요하다"며 "양자기술로 시장에서 가장 안전한 네트워크 사업자라는 신뢰를 쌓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okk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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