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내일 총선…난민 반감 타고 극우·포퓰리즘 급부상하나

입력 2018-03-03 06:00  

이탈리아 내일 총선…난민 반감 타고 극우·포퓰리즘 급부상하나
우파연합 최다의석 확보 전망…'헝 의회' 출현 가능성 높아
반체제 오성운동, 창당 9년 만에 최대정당 '예약'…집권 민주당 참패 예상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유럽연합(EU) 경제 규모 3위인 이탈리아가 내일 상원(315석)과 하원(630석) 의원을 뽑는 총선에 일제히 돌입한다.



이탈리아 각 정파들은 2일 밤(현지시간) 약 2개월에 걸친 선거 운동을 마무리 짓고, 유권자들의 최종 심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초 작년 말까지만 하더라도 이번 총선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구심점으로 한 우파연합, 기성 체제를 뒤집길 원하는 반체제 포퓰리즘 성향의 제1야당 오성운동, 중도좌파 성향의 집권 민주당의 팽팽한 3파전이 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난민 문제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 홀' 역할을 하며 난민에 적대적인 우파연합과 오성운동의 지지세가 확장되는 모양새다.
특히, 지난 달 3일 중부 마체라타에서 극우 청년이 난민 집단에 잔혹하게 피살된 이탈리아 소녀의 복수를 한다는 명목으로 흑인들만을 겨냥해 총격을 가해 아프리카 난민 6명을 다치게 한 사건은 이탈리아 사회에 내재된 난민을 둘러싼 갈등을 극적으로 드러내며, 극우의 지지율 상승세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여론 조사 추이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서 어느 진영도 단독 정부 구성에 필요한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헝 의회'(Hung Parliament)가 출현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이 같은 반난민 정서를 타고 극우·포퓰리즘 성향의 정치세력의 힘이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최다 의석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를 구심점으로 한 우파연합이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은 총선 이전 공표 가능한 마지막 여론조사인 2주전 여론조사에서 37%선의 지지율을 기록, 정부 구성에 필요한 최저 득표율로 여겨지는 40%에 바짝 다가섰다.
우파연합은 베를루스코니가 이끄는 중도우파 정당 전진이탈리아(FI), 반난민·반유럽연합(EU) 성향의 극우당 동맹, 신파시즘에 뿌리를 둔 민족주의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 남부 풀리아 주에 기반을 둔 중도성향의 신생정당 우리는이탈리아와 함께(NCI)가 손잡은 진영이다.



이들은 집권 시 불법 체류 난민 60만명 본국 송환, 세금 대폭 감면, 최저 연금액 인상 등 지키기 어려운 대중 영합적인 공약을 앞세워 지지율을 키워가고 있다. 이 때문에, 경우에 따라 우파연합이 득표율 40%를 넘겨 단독으로 정부를 구성하는 깜짝 결과를 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탈리아 우선'과 난민 단속에 가장 목소리가 큰 극우당 동맹이 두드러진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이 복수의 여론조사 기관을 인용해 보도했다. 2013년 총선에서 득표율이 4%에 그쳤던 동맹은 반난민 정서에 편승, 현재 13%안팎의 지지율을 달리고 있다.
우파연합은 총선 결과 연합 내에서 최다 득표를 하는 정당에서 총리를 내기로 합의한 바 있어, 동맹이 FI보다 총선 득표율이 앞설 경우 EU와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마테오 살비니 대표가 이탈리아 총리 후보로 떠오르는 돌발 상황이 닥칠 수도 있는 셈이다.
현재까지 동맹에 지지율이 2∼4%포인트 앞선 것으로 나타난 FI는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2013년 탈세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아 내년까지 공직 진출이 금지된 터라 그의 측근인 안토니오 타이아니 유럽의회 의장을 총리 후보로 내세웠다.
포퓰리즘 성향의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도 새로운 변화를 원하는 젊은층, 빈곤에 신음하며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남부를 적극 공략하며 선전을 예고하고 있다.
창당 4년 만이었던 2013년 총선에서 총 투표의 4분의 1을 휩쓰는 돌풍 속에 일약 제1야당으로 발돋움한 오성운동은 이번 총선에서는 더 세력을 키워 사상 최초의 집권까지 노리고 있다.



오성운동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28%의 지지율을 기록, 이탈리아 단일정당 가운데 꾸준히 지지율 선두를 지키고 있다. 전국 평균에 비해 통상 투표율이 현저히 낮은 남부에서의 투표율이 상승하고, 3분의 1에 달하는 부동표가 오성운동에 몰릴 경우 득표율 30%를 넘기는 것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기관 윈폴의 페데리코 베니니 대표는 "부동층 다수가 마지막 순간 오성운동을 선택할 것"이라며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들은 변화를 원하고 있고, 이번 선거에서 변화는 오성운동이 대변하고 있는 가치"라고 지적했다.
반면, 지난 5년 동안 국정을 이끌어온 집권 민주당은 중도좌파의 분열로 인해 지지율이 23%선의 역대 최하치로 떨어져 총선 참패를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을 중심으로 친유럽연합(EU) 정당인 플러스유럽 등 중도좌파 정당들이 손을 잡은 좌파연합은 합계 지지율이 약 27%에 그쳐 오성운동 1개 정당의 지지율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당 대표를 맡고 있는 마테오 렌치 전 총리에 반기를 든 당내 소수파들이 탈당해 결성한 중도좌파 정당 자유와평등(LEU)으로 지지율이 분산된 탓이 크다. LEU는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약 6%의 지지율을 보였다.



민주당이 만약 이번 총선에서 2013년 총선 당시 득표율인 25%에도 이르지 못할 경우 분열을 방치한 렌치 전 총리의 책임론이 불거지며 그의 향후 정치 행보에도 악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우파연합이 대(對)EU 정책 등 핵심 의제에서 이견이 큰 만큼, 총선 이후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의 FI와 렌치의 민주당이 전격 손을 잡고 독일식 대연정을 구성할 것이라는 관측도 당사자들의 거듭되는 부인에도 불구하고 끊이지 않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총선은 의석의 3분의 2는 각 정당의 명부에 기초한 비례대표제로, 나머지는 선거구에서 최다 득표자가 당선되는 소선거제로 의원을 뽑는 복잡한 선거법의 적용을 받는 첫 선거인데다, 부동층이 3분에 1에 달하고, 정치 무관심을 반영해 투표율도 최저치로 추락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어느 때보다 결과 예측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광장에 지지자 수 천∼수 만 명이 결집한 가운데 펼치는 유세 방식이 대세이던 과거와 달리, 이번 총선에서는 각 정당에 대한 정부의 선거 보조금이 폐지됨에 따라 대규모 유세가 자취를 감춘 대신, 소셜미디어가 주된 선거 운동 도구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아직도 국민의 절대 다수가 TV를 통해 정보를 얻고 있는 현실에 따라 각 정당 대표들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주요 방송의 시사토론 프로그램, 토크쇼에 경쟁적으로 출연, 공약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했다.
각 정당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여 유권자들에게 정책을 설명하고, 공약을 비교하는 TV토론은 주요 인사들의 거부로 단 한 차례도 성사되지 못했다.
ykhyun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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