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탈출] '세종맘'이 본 해법…'퇴근있는 야근' 아시나요

입력 2018-03-04 06:01   수정 2018-03-04 11:08

[저출산탈출] '세종맘'이 본 해법…'퇴근있는 야근' 아시나요
일 남아도 일단 퇴근 후 다시 회사로…"저녁은 가족과 함께"
통근시간 짧으니 아빠 육아 참여 '쑥'…주거·교육비도 낮은 편
세종, 출산율 1위 도시

(세종=연합뉴스) 정책팀 = "출퇴근 시간이 10분 정도에요. 제가 급하게 어디를 가야 할 때 남편이 와서 30분 정도 큰 아이를 봐주기도 합니다."
황영선(41) 씨는 2년 4개월여 전 남편 직장을 따라 대구에서 세종으로 집을 옮겼다.
처음에는 세종을 단순히 공무원이 많은 '깨끗한 신도시'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사 온 뒤로 전혀 예상치 못한 변화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출퇴근 시간이 짧아지면서 아이들이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직장 생활이 바빠서 일과 시간에 틈을 내기 어렵지만 그래도 언제든지 달려올 수 있는 거리에 남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황 씨는 마음이 든든했다.
"남편도 많이 좋아하고 여기서 쭉 살고 싶다고 말을 자주 해요. 온 가족이 함께 보내는 시간이 정말 많아졌습니다."
황 씨는 세종에 이사를 온 뒤 얼마 되지 않아 '둘째'라는 선물을 받았다.
3번이나 실패를 거듭한 터라 자포자기한 둘째 임신이 거짓말처럼 이뤄졌다.
이런 모습은 세종처럼 일자리가 풍부하고 대규모 주거단지가 형성된 신생도시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특징이다.



대한민국, 특히 인구 절반 가까이 몰려있는 서울·수도권은 명실상부한 세계 최악의 '통근 지옥'이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통근시간은 61.8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길다. 2위인 일본(40분)과도 무려 20분이나 차이가 난다.
젊은 부부들은 세종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야 긴 통근시간이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빼앗는지 깨달았다.
대전에서 이사 온 맞벌이 부부 오민주(35) 씨는 "남편이 공주에서 대전까지 퇴근하는 시간이 1시간이 넘었는데 세종으로 오면서 퇴근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대도시를 떠나면서 부부가 아낀 '긴 통근시간'은 아이를 돌볼 '여유'가 됐다.
경기도 양주에서 살다가 세종으로 이사 온 김수영(23) 씨는 "남편 퇴근 시간이 30분에서 10분으로 줄어드니 아이를 보는 시간이 늘었다"며 "제가 마음이 편하니까 남편도 편하게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허혜진 세종시 육아종합지원센터장은 "센터에서 장난감을 빌려주는데 서울과 비교하면 세종은 아빠들이 빌리러 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고 말했다.
세종에는 일단 퇴근해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뒤 다시 회사로 나와 잔업을 마치는 직장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퇴근 있는 야근'은 한 시간 이상 퇴근길이 일상적인 서울·수도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다.
격무에 치여 사는 중앙부처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이런 모습은 낯설지 않다.
경제부처 한 과장급 공무원은 "세종에서 거주하는 젊은 사무관 중에서 일과를 마치면 일단 집에서 저녁을 함께 먹은 뒤 아이를 재우고 다시 사무실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야근이 없다면 가장 좋겠지만 노동시간 단축이 당장 쉽지 않은 현실에서 그나마 타협할 수 있는 일종의 한국식 '워라밸'(일·가정 균형)인 셈이다.
'퇴근있는 야근'이 가능한 노동 여건은 특히 '워킹맘'에게 만족도가 높다.
중앙부처 한 과장급 공무원 A씨는 정부청사가 과천에 있을 당시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를 돌보기 위해 한 달에 180만 원을 들여 베이비시터를 고용했다.
과천에서 30여 분 거리 군포에 집이 있었지만 퇴근길 교통 체증 등 예상할 수 없는 변수가 많아 아이를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돌보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베이비시터는 엉뚱하게도 동료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야근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되곤 했다.
그럴수록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줄었고 일·가정 양립은 신기루 같이 멀어져갔다.
A 과장은 세종으로 온 뒤 아이를 등원시키고 출근한다. 베이비시터 몫이었던 정기 예방접종도 점심시간을 이용해 직접 챙긴다.
"세종에 오고 나서 아이들 학교 상담, 졸업식 등에 처음 가봤다는 여성 공무원들이 많아요. 과천에 있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이를 돌보면서 일을 하는 환경이 좋아졌습니다." A 과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여유는 신생도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도시화가 진행되면 지속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상업시설이 늘어나고 동시에 집값도 상승하면 경제력이 충분하지 않은 젊은 부부들이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 다시 혼잡 비용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세종 시민들은 이런 혼잡 비용을 줄이는 것이 저출산 대책이 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영유아를 키우는 젊은 가구가 직장 근처에서 살 수 있도록 한시적으로 주거 비용을 일부 지원해주거나 반대로 중소기업이 주거단지에서 가까운 도심 외곽으로 이전하도록 돕는 아이디어 등을 내놨다.
1년 반전 서울에서 세종으로 이사를 온 허은진(38) 씨는 "남편 따라 서울로 되돌아 가야 하는데 다시 혼자 육아를 책임질 생각을 하니 벌써 걱정"이라며 "남편 회사 근처에 집을 마련하려고 해도 집값이 엄두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삼식 한양대 정책학과 교수는 "과거 고도 경쟁 시기 서울의 인구 집적 효과가 이제는 모든 비용을 올려놔버렸다"며 "출산·육아 비용이 너무 많이 들다 보니 젊은 부부들은 수도권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고 일·가정 양립은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roc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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