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항쟁 희생자 은폐…"새 위원회서 진상규명 다시 해야"

입력 2018-03-04 18:47   수정 2018-03-05 07:49

부마항쟁 희생자 은폐…"새 위원회서 진상규명 다시 해야"
항쟁 취재 언론인 출신 전 위원·희생자 유족·기념사업회장 한 목소리
남부희 전 위원 "타살 증거 제출했는데 위원회는 증거 타령", 유성국 씨 "희생자 부인 말문 막혀…은폐위원회"

(창원=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아버지의 죽음이 개인적인 일이지만 크게 보면 역사의 한 부분인데 기록이 날조된 것 같아서 너무 분합니다."
부마민주항쟁 당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돼 현재까지 항쟁의 유일한 희생자로 알려진 유치준(당시 51세)씨 아들 성국(59)씨는 4일 연합뉴스와 만나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명예회복심의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원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안) 내용에 진실이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유성국 씨는 "당시 마산경찰서 소속 경찰관이 작성한 자료, 사망 장소 인근에 있던 목격자, 목격자의 진술을 기록한 취재기록 등 다양한 타살 정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고서엔 아버지를 희생자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적은 것을 확인하고 말문이 막혔다"고 말했다.
유 씨는 보고서 200쪽부터 시작되는 '부마민주항쟁 관련 사망자' 부분에 아버지 관련 내용이 객관적 자료를 무시한 채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데 나머지 내용은 안 봐도 뻔하지 않겠냐고 되물었다.
유 씨는 "부친 시신 인도 시기, 사망 원인, 아버지의 주민등록증이 있었지만, '신원을 알 수 없는 행려자'로 처리한 것 등 모든 자료가 앞뒤가 맞지 않는 거짓이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그는 "경찰 보고서에는 '정황으로 보면 타살이 분명하다'는 내용이 있지만 이런 기록조차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위원회는 은폐 위원회에 가깝다"고 비난했다.
위원회 보고서는 유치준 씨에 사망에 대해 '객관적인 자료가 없어 부마항쟁 사망자로 판단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
허진수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장은 이에대해 "최초 위원들 구성부터 부마민주항쟁을 부정하거나 좋은 시선으로 보지 않는 분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이어 허 회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 유신정권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이 참여한 위원회에서 만든 보고서를 신뢰할 수 있겠냐"며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지지 않았으니 처음부터 다시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성국 씨와 허진수 사업회장의 주장은 항쟁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언론인으로, 이번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으로도 한 때 참여했던 남부희(71) 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의 당시 자료 및 기록에 주로 근거한다.
1979년 10월 부마민주항쟁 당시 경남매일 (현 경남신문) 사회부장을 맡아 현장을 취재했던 남 교수도 진상규명위원회가 내놓은 보고서를 확인한 뒤 "핵심 자료를 제출했지만, 위원회가 인정하지 않았다"고 위원회의 부실한 조사를 비판했다.
남 교수는 당시 부마민주항쟁을 취재하기 위해 18명으로 된 특별취재반을 편성, 현장을 낱낱이 기록했다고 밝혔다.



그는 연합뉴스와 만나 당시 특별취재반 기자가 마산경찰서(현재 마산중부경찰서)에서 입수한 문서 등 다양한 자료를 공개했다.
남 교수가 취재기자로부터 보고받은 '변사자 발생' 자료에는 1979년 10월 19일 당시 마산시 합포구 산호동 골목에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돼 유치준 씨로 추정되는 사람에 대해 '타살체가 분명'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변사자 발생' 자료에는 '大林(대림)여관 앞 도로변(새한자동차 영업소 앞)에서 50여세로 보이는 노동자풍에 작업복차림의 남자가 왼쪽눈에 멍이 들고 퉁퉁 부은채(코와 입에서 피를 흘린채) 죽어 있었음/ 민방위 모자/ 얼굴 동근편/ 키 160㎝가량'으로 현장 상황을 전했다. 그리곤 '※정황으로 판단, 타살체가 분명'이라고 기록돼 있었다.



남 교수는 "이 자료는 부마민주항쟁 10주년 기념 자료집에 실린 것으로 진상규명위원회에 '증거 1호 기록물'로 채택한 자료인데…"라며 "그들이 증거물로 직접 채택한 내용이 정작 보고서에 없는 게 이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고 유치준 씨 죽음에 대해선 피조사자의 입장에서 위원회측에 경찰, 시청 등의 객관적인 자료와 타살 정황 등을 충분히 설명했다.
타살 증거를 제출했는데도 위원회는 "타살 증거를 말하세요"라고 증거 타령만 되풀이했다고 남 교수는 조사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현장을 기록한 기자이자 경남도가 추천해 진상규명위원회에 참가했던 위원이지만 위원회의 반복되는 증거 타령에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위원직을 중도 사퇴했다.
남 교수는 "함께 일한 사람에게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사퇴 이유 등 여태 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에 공개된 부실한 보고서(안)를 확인하고 역사·시대적 책임을 하기 위해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유 씨의 타살 정황이 제외된 것뿐만 아니라 보고서 상당 부분이 부실하다고 지적했다.



남 교수는 당시 마산MBC와 경남매일(현 경남신문)이 시위대에 의해 '동시에 공격을 받았다'는 보고서 내용이 있는데 당시 경남매일은 항쟁이 발생하기 2년 전에 사옥을 이전, 전혀 근거 없는 내용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동안 조사위에 파견된 관계부처 직원들이 4∼5개월마다 교체돼 제대로 조사가 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남 교수와 유성국 씨, 허진수 회장 등은 한결같이 "관계 부처가 전담반을 구성해 유치준 씨 사건만이라도 제대로 정황 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부마민주항쟁은 1979년 10월 16∼20일 마산과 부산 등 경남 일대에서 박정희 유신체제에 반발해 학생과 시민들이 일어났던 민주화 투쟁이다.
진상규명위원회는 박근혜 정부 핵심 국정과제의 하나였던 부마민주항쟁 진상 규명을 위해 2014년 10월 13일 꾸려졌으며, 정확한 진상 조사와 함께 부마항쟁 피해자와 유족 명예회복·보상에 관한 업무까지 수행했다.
한편 최종 보고서는 보고회 등을 거친 뒤 오는 4월 12일 위원회에서 최종 채택 여부를 결정한다.
imag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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