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조사 최다의석 우파연합의 구심점…정치전면 복귀 가능성
'킹메이커' 전망도…"숙성된 와인" 자평 vs "감방에 있을 인물"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4일 실시된 이탈리아 총선 과정에서 가장 큰 주목을 받은 이는 단연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81)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각종 추문과 이에 따른 송사에 건강 이상까지 겹치며 정치적 생명이 끝난 것으로 여겨졌던 그가 건재를 과시하며 화려하게 부활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3번째 총리직(2005년 이뤄진 개각을 감안하면 4번째 총리직)을 수행하던 2011년 이탈리아가 국가 부도 위기 직전까지 가는 벼랑 끝에 몰리자 국내외의 압력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이후 미성년자 성매수, 탈세, 수뢰 등의 혐의로 계속 법정에 불려 다녀 체면을 구겼고, 2013년에는 탈세 재판에서 끝내 유죄를 선고받으며 상원의원직을 박탈당하고 정계를 떠나는 처지가 됐다.
2016년 여름 심장 판막 교체 수술을 받은 뒤로는 각별히 애정을 쏟은 이탈리아 프로축구단 AC밀란을 중국 자본에 매각하는 등 주변을 정리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그의 은퇴는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하지만, 그는 작년 6월 지방선거에서 우파연합의 막후 역할을 하며 압승을 이끈 것을 계기로 정치를 재계할 조짐을 보이더니, 오성운동과 각축을 벌인 작년 11월 시칠리아 주지사 선거전에서는 우파연합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승리를 일궈냈다.
이번 총선에서도 그의 존재가 없었다면 철학과 정책에서 견해차가 큰 우파 정당들이 한편에 서서 선거를 치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란 게 정가의 시각이다.
그는 2013년 탈세 혐의가 유죄로 확정된 여파로 2019년까지 공직 진출이 금지된 탓에 선거를 승리로 이끌더라도 스스로 또 총리가 될 수는 없지만, 오른팔 격인 안토니오 타이아니(63) 유럽의회 의장을 대리인으로 내세워 '킹메이커' 역할을 수행하며 향후 진행될 정부구성 작업에 있어서도 상당한 입김을 행사할 전망이다.
고령의 그는 1년 반 전에 받은 심장 수술로 인해 과거처럼 대규모 유세에 나서지는 못했으나 TV와 라디오를 종횡무진 누비며 성형시술에 힘입은 팽팽한 피부와 녹슬지 않은 입담을 자랑했고, 이는 노년층, 중·하류 계층 등 그의 전통적 지지층을 결집하는 효과를 냈다.
과거 3차례 총리를 맡아 이탈리아를 통치하던 시절에는 포퓰리스트 정치인으로 인식됐던 그는 자신을 "위험한 포퓰리즘의 물결에 맞서 유럽과 이탈리아를 지킬 온건한 정치인"이라고 포장하며 이번 선거전에 임했다. 한 TV 토크쇼에서는 "나는 좋은 와인과 같다. 나이가 들면서 전보다 더 발전해 지금 완벽한 상태"라고 자화자찬하기도 했다.
각종 성추문과 비리 의혹에도 불구하고, 이런 그에게 여전히 호응하는 지지자들을 보며 경쟁자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우파연합과 이번 선거의 승부를 가른 남부를 놓고 혈투를 벌인 오성운동의 대표 정치인 알레산드로 디 바티스타는 "정상 국가라면 그는 감옥에 있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또 남부에서 특히 민감한 주제인 베를루스코니와 마피아 결탁설을 다시 거론하는가 하면, "이탈리아인들은 정말 멍청하고, 이상한 사람들"이라고 말하며 베를루스코니에 여전히 열광하는 사람들에게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는 오랜 사업 파트너이자 그를 정계로 이끈 마르첼로 델룰트리 전 상원의원이 마피아 결탁 혐의로 징역을 살고 있어, 그 역시 마피아와 연루됐다는 의혹에 시달려왔다. .
한편, 밀라노의 중하층 가정에서 태어난 베를루스코니는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뒤 진공청소기 판매원, 나이트클럽과 크루즈선의 가수 등으로 일하다가 건설회사를 창업, 밀라노 외곽에 아파트 단지를 지어 부를 일궜다.
이후, 사회당 출신의 총리로 훗날 불법 정치 자금 수수 혐의를 받던 중 튀니지로 망명한 베니토 크락시의 도움으로 이탈리아 최대 민영방송 3개를 거느린 미디어그룹 메디아세트를 창립하며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미국의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그와 그의 가족이 소유한 재산은 약 80억 달러(약 8조7천억원)에 달한다.
1992년 막이 오른 대대적인 부패 수사를 일컫는 '마니 풀리테'로 전후 이탈리아 정계를 지배했던 기독민주당이 몰락하며 생긴 정치적 진공 상태를 파고들며 정치에 입문한 베를루스코니는 1994년 총선에서 처음 집권에 성공, 7개월 동안 총리를 지냈다.
이후 2001년∼2006년, 2008∼2011년 다시 총리직을 맡으며 이탈리아가 공화정으로 이행한 뒤 최장수 총리 기록을 수립했다. 하지만, 재벌 출신인 그의 집권 기간 이탈리아는 정치와 경제의 경계가 느슨해지며 부패가 더욱 심해졌다는 오명을 썼다.
그는 2010년 자신의 호화 별장에서 이뤄진 일명 '붕가붕가' 파티에서 당시 미성년자였던 모로코 출신의 무희 카루마 엘 마흐루그에게 돈을 주고 성관계를 한 혐의로 기소됐고, 이 역시 이탈리아의 국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줬다.
그는 1심에서 미성년자 유인과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징역 7년 형에 처해졌으나, 2015년 항소심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판정을 받았다. 미성년자 성매수 사건과 관련한 재판에서 증인들에게 돈을 주고 위증을 교사한 의혹에 대해서는 현재까지도 재판이 진행 중이다.
그는 2차례 이혼을 거쳐 지금은 TV 쇼걸 출신인 49살 연하의 프란체스카 파스칼레와 동거 중이다.
이날 선거가 끝난 직후 이탈리아 공영방송 RAI는 출구조사 결과를 통해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중도우파 전진이탈리아(FI)가 극우정당 동맹, 이탈리아형제들(FDI) 등 다른 3개 정당과 연대한 우파연합이 33∼36%를 득표,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우파연합은 정부구성에 필요한 최소 득표율로 인식되는 40%에는 미치지 못해 자체적으로 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됐다.
ykhyun1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