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지리는 어떻게 글로벌 자동차업체가 됐을까

입력 2018-03-05 12:33  

중국 지리는 어떻게 글로벌 자동차업체가 됐을까
20여년 전 벤츠 분해로 車개발 시작…이젠 다임러 최대주주
2006년 첫 모터쇼서 수모…2010년 볼보 인수 성공이 전환점
디자인 개편하고 전기차 전환 가속…글로벌 톱10 진입 노려

(서울=연합뉴스) 문정식 기자 = 중국의 지리(吉利) 자동차가 해외 자동차회사 인수나 지분 투자를 통해 그 기술을 흡수함으로써 글로벌 자동차회사로 도약할 채비를 하고 있다고 월 스트리트 저널(WSJ)이 4일 보도했다.
지리 자동차 측은 지난달 24일 메르세데스 벤츠를 거느린 독일 자동차회사 다임러의 지분 9.7%를 90억 달러(한화 9조7천여억 원)에 사들여 쿠웨이트 국부펀드를 제치고 최대주주가 됐다. 이로써 지리 자동차는 중국 최초의 글로벌 자동차회사로 한 걸음 더 다가선 셈이다.
20여 년 전 사실상 무명의 모터사이클 회사이던 지리의 기술자들이 이 회사 리수푸(李書福) 회장의 '애마' 메르세데스 벤츠를 낱낱이 분해해 자동차 제작 연구를 시작한 점에 비춰보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화다.
지난 2010년 지리 자동차에 인수된 스웨덴 볼보 자동차의 하칸 사무엘손 최고경영자(CEO)는 3년 전만 해도 지리가 중국 최초의 글로벌 자동차회사가 될 수 있다고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밝히면서 "지금은 적절한 추측"이라고 말했다.
리수푸 지리 회장은 2001년에 일찌감치 장래의 성공을 예견했었다. 그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제너럴 모터스(GM)와 포드 같은 미국 기업들이 결국은 무너지고 지리나 다른 신생 기업들이 부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랜 세월 동안 그의 장담은 공허한 약속으로 남아있었다. 최근까지도 지리의 국내 판매량은 연간 50만대를 넘지 못할 정도로 부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고 2006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처음으로 참가해 국제 시장을 노크했으나 혹평을 받는 수모를 겪었다.
성공의 초석은 볼보 자동차를 인수한 것이었다. 지리는 선진 자동차 기술을 직접적으로 접하게 되면서 국내 경쟁사들에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다.
지난해 지리의 판매실적은 전년보다 근 2배가 늘어난 125만대를 기록했고 홍콩 증시에 상장된 이 회사 주가는 근 3배가 뛰었다. 트럭에서 슈퍼카에 이르는 지리의 다양한 모델 라인은 중국내 경쟁사보다 압도적인 것이다.
지리는 지난해 볼보와 함께 '링크'(Lynk & Co.)와 '폴스타'(Polestar)라는 새로운 브랜드도 공동으로 출시했다. 폴스타는 테슬라를 겨냥해 설립된 고급 전기차 브랜드로, 내년에 시판을 계획하고 있다.


지리 자동차 그룹 차원의 판매량은 지난해 200만대에 육박하지만 연간 1천만 대를 판매하는 폴크스바겐과 도요타, 제너럴 모터스에는 비할 바가 못 된다. 다임러 인수를 통해 벤츠의 노하우를 습득할 수 있을지도 두고 봐야 할 대목이다.
해외 경쟁사들보다도 더 많은 자동차를 생산하지만 세계 무대에서 경쟁할 만큼 뛰어난 자동차는 생산하지 못하는 것이 중국 업계가 마주친 한계다.
물론 중국산 자동차가 질적인 개선을 이뤘지만 국내 소비자들의 회의적 시각은 여전하다. 중국 자동차회사들과 합작으로 생산되는 외산 브랜드가 순수 국산 브랜드보다 잘 팔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리는 초기에는 저가 자동차 생산 기업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리가 질적 개선에 눈을 돌린 것은 리수푸 회장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겪은 참담한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리수푸 회장은 인수를 통해 질적 개선을 이룬다는 길을 택했다. 2007년 디트로이트 모터쇼에 다시 모습을 나타낸 그는 포드 자동차의 부스로 이 회사 경영자들을 찾아갔다.
그는 볼보 인수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으나 당시 산하에 볼보를 거느리고 있던 포드 측 인사들은 그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했다. 그들은 정중하게 볼보를 팔 생각이 없다고 답했다고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현금 확보가 급해진 포드 측은 볼보를 인수하고 싶어한 중국 기업인을 기억했고 결국 그에게 이 회사를 매각했다. 매각 대금은 포드가 당초 볼보를 인수하는 데 쓴 돈보다 형편없이 적은 18억 달러였다.
지리 자동차 내부에서는 볼보 인수가 실패할 것이라고 본 이들이 많았다. 유럽 자동차 업계에서는 더욱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었다.
리수푸 회장은 최종 인수 계약에 앞서 볼보를 스웨덴 회사로 남겨둘 것을 약속하는 부속 문서에 서명했다. 다만 이 문서가 법적으로 구속력이 없도록 하자고 고집했다.
볼보 자동차의 노조위원장인 글렌 베르그스트룀은 지난 8년 동안 그는 합의를 존중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이는 1999년 볼보를 인수한 포드보다는 나은 셈이라고 말했다.
빅터 양 지리 자동차 부사장에 따르면 포드의 손에 넘어가 있을 동안 투자에 목말라했던 볼보는 지리에 인수된 이후 110억 달러의 자금을 수혈받았다. 볼보는 그 덕분에 성공적으로 회생할 수 있었다.
지난해의 판매실적 57만2천 대는 전년보다 무려 72%가 늘어난 것이고 순익도 17억5천만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볼보의 스웨덴 현지 인력은 근 2배가 늘어난 2만1천 명이며 벨기에 공장의 인력도 2천 명에서 5천 명으로 불어났다.
두 회사의 문화 충돌도 없지는 않았다. 사무엘손 볼보 CEO에 따르면 2012년 볼보를 방문한 리수푸 회장은 자동차 뒷좌석 디자인을 보고 경악했다는 것이다.
사무엘손 CEO가 스웨덴에서 자동차 뒷좌석은 개를 태우는 자리로 간주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우리 엔지니어는 뒷좌석을 중시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자 리수푸 회장은 "중국에서는 차 값을 내는 사람이 뒷좌석에 앉는다"고 응수했다는 것이다.
볼보는 1927년 창사한 이래 최초로 중국과 미국, 유럽 등 세계 3대 시장에 모두 생산공장을 갖추게 됐다. 볼보가 5억 달러를 들여 미국에 처음으로 세운 공장은 내년부터 생산을 개시할 예정이다.
지리 자동차는 볼보와 포드의 고급차 디자인 책임자로 일했던 피터 호베리를 영입하면서 칙칙했던 모델 라인도 쇄신할 수 있었다. 호베리는 리수푸 회장의 면전에서 가혹한 평가를 내렸고 그는 이를 잠자코 받아들이며 전면 개편을 승인했다는 것이다.
대대적인 변신을 거친 지리 자동차의 모델들은 2014년 12월 시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지리 자동차는 결국 3년 만에 판매실적을 3배로 늘리는 기념비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중국 정부가 전기차 육성에 주력함에 따라 리수푸 회장은 이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볼보는 내년부터는 순수 전기차 혹은 하이브리드 모델만을 생산할 계획이며 지리는 2020년까지 자사 생산량의 90%를 전기차로 전환할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빅터 양 부사장은 현재로서는 2020년까지 그룹 전체의 판매실적을 300만 대로 늘리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달성하면 세계 10대 회사의 반열에 들어갈 공산이 크다.
하지만 지리의 도약에 회의적인 시각도 없지 않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지리가 지난해 눈부신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오래 지속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UBS의 폴 공 애널리스트는 ""지금은 지리지만 과거에는 다른 회사들이었다"고 꼬집으면서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빠른 기술 발전 때문에 머지않아 지리는 물론 다른 전통적 자동차 회사들이 혁신적인 경쟁자들에게 가려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리수푸 회장은 WSJ의 인터뷰 요청을 사양한 대신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다임러에 투자한 것은 기술의 신속한 발전이라는 도전에 대응하는데 도움이 될 "새로운 친구와 파트너, 동맹"을 확보하려는 데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주 독일 언론에는 다임러의 이사 자리를 얻는 것이 그의 우선적 관심사가 아니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다임러는 이미 베이징 자동차를 중국 측 파트너로 두고 현지에서 벤츠를 합작 생산하고 있다. 다임러 대변인은 리수푸 회장이 다임러 지분 인수 목적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다고 말했다.
jsmo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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