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미국이나 EU나 피장파장일 수 있다"
(서울=연합뉴스) 황정우 기자 = 유럽연합(EU)이 미국의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대한 고율의 관세부과 방침에 보복관세를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즉각 밝혔지만 이런 EU의 대응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 자체를 어길 위험이 있다고 영국 경제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가 6일(현지시간) 전문가들의 견해를 인용해 보도했다.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미국이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면 EU는 미국에서 수입되는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 미국산 위스키, 리바이스 청바지 등에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맞불'을 놓았다.
EU 집행위 관리들은 전날 회원국들에 미국이 관세부과를 강행할 경우 보복조치에 나설 총 수입액 28억 유로(약 3조 7천200억원) 규모의 100여개 미국산 상품들이 담긴 리스트를 보여줬다고 FT는 전했다.
세실리아 말스트롬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전날 영국 공영방송 BBC와 인터뷰에서 EU의 보복 조치들은 "완전히 합법적"일 것이라면서 WTO 규정들에 부합하도록 맞출 것이라고 강조했다.
EU 관리들은 '국가 안보'라는 트럼프 정부의 논리를 거부하고 '세이프가드'와 마찬가지라는 반론을 펴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세이프가드는 예기치 않게 수입이 급증해 자국 산업이 피해를 볼 경우 비슷한 수준으로 보복할 수 있는 WTO 규정에 따른 무역보복 조치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에 수입 철강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 위해 '무역확장법 232조'를 활용했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국가 안보를 이유로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법으로 2001년 이후 16년간 사용하지 않아 사실상 사문화됐다.
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 ·CFR) 선임연구원 에드워드 앨던은 WTO 규정을 확대해석함으로써 EU 보복 조치는 WTO를 약화하고 무역전쟁을 악화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앨던 선임연구원은 "규칙 없는(no-rule) 무역전쟁과 거의 다름없다"고 표현했다.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케이토연구소(Cato Institute) WTO 법규 전문가 사이먼 레스터는 EU가 새로운 선례를 만들 수 있다는 대목을 지적했다.
미국이 국제통상에서 거의 이용되지 않은 국가 안보를 활용한다고 비난하지만, EU 역시 자신이 비난하는 그 방식과 비슷한 형태를 취한다는 것이다.
그는 "WTO 규정을 어기는 측면에서는 피장파장일 수 있다"며 미국이나 EU 둘 다다른 국가들이 WTO 규정을 위반하는 문을 열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WTO 항소기구에서 일한 제니퍼 힐먼은 트럼프의 관세부과가 세이프가드와 마찬가지라는 EU의 주장이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힐먼은 EU가 심지어 미국과의 무역전쟁까지 고려하는 상황은 트럼프 정부가 밝힌 관세부과 방침이 가져온 국제통상의 체계적 위험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EU는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02년 수입 철강에 대해 3년 기간의 세이프가드 조처를 발동했을 때 버번위스키와 오토바이 등에 대한 보복관세를 압박 카드로 꺼낸 적이 있다. 결국, 부시 전 대통령은 2003년 세이프가드를 철회했다.
jungw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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