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 사건이 국민을 충격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성범죄 피해자의 '미투'(# Me too) 운동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안 전 지사의 6급 정무비서인 김지은(33) 씨는 5일 밤 JTBC에 출연해 "안 지사의 수행 비서를 맡은 지난해 6월부터 8개월 동안 네 차례의 성폭행과 함께 수시로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김 씨는 6일 안 전 지사를 검찰에 고소하겠다고 했다. 방송이 나간 직후 안 전 지사 비서실은 "부적절한 성관계는 인정하지만 합의한 성관계였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안 전 지사는 6일 새벽 페이스북을 통해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면서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다. 모두 제 잘못"이라고 시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충남도지사 직을 사퇴하고 일체의 정치활동도 중단하겠다고 했다.
안 전 지사는 19대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자였고, 대선 후에도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됐다. 그랬던 안 전 지사가 30년 정치역정을 '성폭행범'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마감하게 됐다. 안 전 지사는 친노(친노무현) 그룹과 586세대를 대표하는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이번 사건의 충격은 메가톤급이다. 그는 2002년 16대 대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 정무팀장을 지내는 등 대선 승리의 일등공신으로 꼽혔다. 노 대통령 당선 후 불법 대선 자금 수수 혐의로 구속돼 '폐족(廢族)' 위기에 몰렸으나 역경을 딛고 2010년 충남지사에 당선된 뒤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19대 대선에선 민주당 경선에 출마해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정치인생의 절정을 맞기도 했다.
여권의 촉망받던 정치인이 성폭행이라는 파렴치한 범죄로 낙마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국민의 마음은 무겁다. 배신감을 넘어 허탈한 마음마저 든다. 안 전 지사는 작년 7월 러시아 공식 방문, 9월 스위스 제네바의 인권이사회 토론 참석 기간에도 김 씨에게 몹쓸 짓을 했다고 한다. 미투 운동이 급속히 확산하던 지난달 25일에는 김 씨를 위로하는 척하면서 재차 성폭행했다 하니 아연실색할 따름이다. 안 전 지사는 도지사 사퇴와 정치활동 중단으로 이번 사건을 적당히 덮으려 해선 안 된다. 수사 당국의 조사에 성실히 응하고 법에 따른 응분의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성명에서 "안 지사의 범죄는 명백한 권력형 성폭력"이라면서 "정치활동 중단 등 도덕적 책임 수준으로 면피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피해자 김 씨의 고소가 접수되는 대로 이미 내사에 들어간 경찰과 조율해 신속히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 김 씨가 밝힌 것처럼 안 전 지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가 더 있는지, 김 씨가 피해 상황을 주변에 알렸는데 적절한 보호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는지도 명확히 밝혀야 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안 전 지사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에도 악재다. 민주당은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6·13 지방선거'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5일 밤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어 안 전 지사에게 최고 수준인 출당과 제명의 징계를 내리기로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추미애 대표는 6일 페이스북 글에서 "큰 충격을 받으신 국민 여러분께 거듭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야당의 공세 수위도 높다. 자유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겉과 속이 다른 좌파 진영의 이중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박주선 공동대표는 "진보정권의 민낯을 보는 것 같다. 민주당과 집권세력은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민주당은 사안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철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번 사건은 정치권으로 미투 열풍이 번지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여건 야건 힘에 눌려 침묵하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가 없는지 살펴봐야 한다. 아울러 정치인들이 자신의 도덕성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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