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우스 "비핵화 테이블 올린 건 진전", 매닝 "틸러슨 평양 가야"
"미국측 대표 선정 중요"…북한의 합의 파기 반복에 회의론도
(워싱턴·서울=연합뉴스) 이승우 특파원 권혜진 기자 =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6일(현지시간) 북한이 '비핵화 대화' 용의를 보인 점을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했다.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해온 비핵화를 북미 간 대화의 의제에 포함할 가능성을 연 것만으로도 오랫동안의 교착 상태를 거듭해온 북핵 협상 국면에 돌파구가 조성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북한이 조건부 핵·미사일 도발 중단 의사를 밝힌 부분을 사실상의 '핵 프로그램 모라토리엄(잠정중단)'으로 규정하면서 북미 간 '탐색적 대화(exploratory talks)'에 착수할 여건이 충분히 조성됐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또 앞으로 북한이 한국을 통해서뿐 아니라 직접 미국 정부에 이번 제안의 의도를 상세히 설명하는 동시에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가 병행돼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은 연합뉴스와 서면인터뷰에서 "북한이 북미 협상이 지속하는 동안 핵과 미사일 시험을 중단한다면, 그것은 사실상 모라토리엄"이라고 말했다.
매닝 연구원은 또 "북한이 공식으로 직접 미국과의 대화 의지를 밝힌 것은 미국 입장에서 탐색 대화의 1회전을 시작할 타당한 조건을 충족한다"며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당장 평양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언론을 통 전해진 북한의 입장이 모두 사실이라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소한 '탐색 대화'라도 시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덧붙였다.
켄 가우스 미국 해군연구소 박사는 "미국과의 협상에 들어가기 위해 핵 프로그램을 흔쾌히 협상 테이블에 올린 게 새로운 것"이라며 "이것은 진전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의 이번 제안을 결국 북한이 미국의 요구에 굴복하고 양보하고 나선 것으로 선전하면서 북한과의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가우스 박사는 또 북한의 핵·미사일 조건부 중단 의사를 모라토리엄 성격으로 규정하면서도 북한은 미국·한국과의 협상에서 얻어낼 게 없다고 판단한다면 언제든 이를 철회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CFR) 선임연구원도 "북한 스스로 핵과 미사일 시험을 제한하겠다고 약속한 것은 중요한 잠재적 발전으로 협상을 위한 긍정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또 "북한은 중재역으로 워싱턴DC에 오는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을 통한 미국과의 소통뿐 아니라 직접 그들의 의도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셉 윤 미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가 최근 사임한 상황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보낼 특사 선임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량파괴무기(WMD) 정책조정관과 조엘 위트 미 존스홉킨스대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미 공영라디오 NPR에 기고한 글에서 지난 25년간 북한과 접촉한 경험을 볼 때 양쪽의 입장도 중요하지만 누가 대화를 하는지도 성공과 실패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고위급 특사를 선임해야 하며 강력한 범부처 성격의 팀이 특사를 뒷받침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평소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이었던 인사들이 북미 대화 가능성에 기대를 내비치며 트럼프 대통령의 성과를 인정하기도 했다.
트럼프 비판론자이자 정치위험 연구가인 이안 브레머 유라시아 그룹 회장은 "칭찬받을 만하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madman) 전략이 이 같은 상황 변화에 기여했다고 해석했다.
다만 북한이 실제로 핵 폐기 의지를 보인 것이냐는 데 대해서는 조심스럽고 다양한 전망이 나왔다.
가우스 박사는 "갈 길이 멀다. 북한 정권은 억제력이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으로 본다"면서 "김정은이 핵 프로그램 폐기를 진지하게 시작하는 데는 많은 당근과 신뢰 구축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나이더 연구원은 "잠재적으로 의미 있는 발전이지만 아직 판단하기는 이르다"면서 "김정은 정권의 솔직한 목적은 생존을 보장받는 것"이며 "김정은이 핵으로 위협하는 것보다 생존을 더 잘 보장할 수 있는 것을 얻는다면 더는 핵무기가 필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닝 연구원은 "비핵화를 한다면 모든 게 가능하지만, 비핵화가 없다면 아무것도 안된다고 김정은에게 얘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북미 정상회담의 성사 여부에 대해서는 사실상 전적으로 북한의 행보에 달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가우스 박사는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북한이 진정으로 전제조건 없이 비핵화를 위한 대화에 나선다면 가능하다"고 했고, 매닝 연구원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폐기에 구체적인 진척이 이뤄진 뒤에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또한, 북한이 과거에도 핵무기 동결 등을 조건으로 보상을 요구하는 합의를 체결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파기한 과거사가 있다는 점에서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특히 과거 북한과 협상한 적이 있는 인사들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와 2005년 9·19 비핵화 공동성명 등 북한이 비핵화를 내세워 합의와 파기를 반복한 사례가 있다는 점에서다.
에이브러햄 덴마크 전 국방부 동아시아 부차관보는 "나라면 지나친 낙관주의는 주의하겠다. 과거에도 이 길을 여러 번 걸었기 때문"이라며 "결과적으로 성공한다고 해도 불확실성과 차질로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북한과의 협상에 참여한 적이 있는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부차관보도 '안보 보장을 전제로 한 비핵화'라는 공식은 이미 여러 차례 회담의 근간이 됐다며 "이런 보장이 북한에 받아들여진 적이 없다. 미국의 대체 에너지 자원이나 식량 지원도 적절치 않았다"고 말했다.
리비어 전 부차관보는 또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잠정중단'에도 북한 정권이 핵무기 건설을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정책기획실장을 지낸 미첼 리스는 "지난 30년 동안 군사력 사용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북옵션을 시도해봤지만, 아무것도 북한을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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