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수도 관련 시설 세계유산 등재 추진 과정서 문화재청 요구
항만공사 "기존 국가계획과 충돌해 고민, 충분한 협의 필요"
(부산=연합뉴스) 이영희 기자 = 한참 진행 중인 북항재개발사업이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 계획 수정을 고민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재개발 대상인 북항 1부두의 원형보존 요구가 제기된 때문이다.
8일 항만공사에 따르면 최근 부산시가 피란수도 유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위해 1부두를 원형대로 보존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부산시는 6·25전쟁 당시 피란수도였던 부산의 위상을 재조명하고 관련된 역사문화자원을 세계에 널리 알릴 목적으로 관련 시설물 등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부산시가 신청한 북항 1부두 등 8곳을 종합보존관리 대책 수립 등의 조건을 달아 대한민국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했다.
이 과정에서 1부두를 원형대로 보존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부산시는 전했다.
부산시는 문화재청이 요구한 조건을 보완해 최종 잠정목록에 올리고 2025년까지 세계유산으로 등록하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1부두는 수탈의 통로이자 강제징용자들이 끌려간 아픔이 서린 현장이며 6·25전쟁 때는 유엔군과 군수물자들이 들어오고 수많은 피란민이 자유를 찾아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이기도 하다.
부산시는 원형 보존을 위해 지방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8년에 확정된 북항재개발계획에는 1부두와 2부두 사이 바다를 매립해 도로를 내고 해양문화시설을 세우기로 돼 있다.
따라서 1부두를 원형 보존하려면 재개발지역을 관통하는 간선도로망 건설, 주거와 상업기능이 들어가는 복합도심지구 조성 등 기존 계획을 대폭 수정해야 한다.
간선도로망 일부를 포기하고 아파트와 호텔 등이 들어설 복합도심지구도 면적을 크게 줄여야 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재개발사업 전반의 조화가 깨지고 인구증대를 바라는 원도심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대도 예상된다.
항만공사 관계자는 "역사자원을 보존하는 게 가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미 확정된 국가계획과 충돌하는 상황이라 고민이다"라며 "깊은 논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부산시와 충분히 협의해 원형보존 요청 수용 여부를 정해야 하며 그에 앞서 시민여론 수렴과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세계유산 등록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원형보존을 바라지만 기존 재개발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문제인 만큼 항만공사, 문화재청과 어떤 방향으로 풀어갈지 협의할 방침이며 아직은 아무 것도 정해진 게 없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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