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외톨이' 우려 vs 사실상 한일 FTA라 부담
(서울=연합뉴스) 김영현 기자 = 일본 주도의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이 8일 공식 출범함에 따라 우리나라 통상당국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양자 대신 다자 FTA로 거세지는 통상 파고를 뚫겠다는 게 우리나라의 기본 전략이지만 선뜻 가입을 결정하기엔 고려해야 할 민감한 요소가 많기 때문이다.
CPTPP는 일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멕시코, 칠레, 페루, 싱가포르, 베트남,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11개국이 지난 1월 최종 합의했으며 8일 오후(현지시간) 칠레에서 정식 서명한다.
협상에서 탈퇴했던 미국마저 최근 복귀에 관심을 보이면서 우리나라도 가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미국은 TPP 복귀를 통해 글로벌 무역전쟁에서 중국을 견제할 수 있고, FTA 체결에서 한국에 뒤진 일본은 미국을 끌어들이면서 단번에 'FTA 허브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한국으로서는 중국과 함께 묶여 미국의 통상압박에 더욱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 한미 FTA 개정 압박 수위도 더욱 높아지는 등 자칫 우리나라가 글로벌 시장에서 '통상 외톨이'가 될 우려도 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압박카드로 TPP 가입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양자보다는 메가 FTA 가입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우리도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면서 이에 동참할 필요성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은 CPTPP 가입 본격 추진을 놓고 머뭇거리는 상황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8일 배포한 보도자료를 통해 "향후 정부는 11개국의 CPTPP 발효 관련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는 한편 '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통상절차법)'에 따라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CPTPP 가입 여부를 연내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입하더라도 먼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해득실을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CPTPP 11개 회원국 중 일본, 멕시코를 제외한 9개국과 이미 양자 FTA를 체결해 관세를 상당 부분 철폐했기 때문에 당장 CPTPP에 가입이 안 돼 있다고 해서 이들 국가로 수출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점도 가입을 서두르지 않는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정부가 CPTPP 가입을 놓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일본 때문으로 분석된다.
CPTPP에 가입하는 것은 결국 일본과 FTA를 맺는 것과 비슷한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산업이 그간 상당한 경쟁력을 갖췄다고는 하지만 일본과 서로 시장을 전면 개방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면이 많은 상황이다.
자동차, 기초 소재·부품 등 일본의 우수한 제품이 지금보다 낮은 관세로 한국 시장에 밀려들면 내수 시장 상당 부분을 빼앗길 수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일본 제품에 맞서 여러 분야에서 '관세 장벽'을 치고 있지만 해마다 엄청난 무역수지 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일본에 268억달러를 수출했지만 수입액은 551억달러나 됐다.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283억달러로 미국 대상 무역수지 흑자 179억달러보다 훨씬 많다.
이에 무역협회 통상지원단 이요셉 과장은 "이제 우리나라도 CPTPP 가입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하는 시점인 것은 맞다"며 "하지만 각 부처와 산업계 의견을 두루 수렴하는 절차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성급하게 가입 여부를 결정하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먼저 TPP에서 탈퇴한 미국이 다시 들어간다고 해서 우리가 서두를 필요는 없다"며 "미국이 복귀하더라도 아직 시간이 있고 우리와 일본의 FTA 문제도 걸려 있기 때문에 가입하더라도 신중하게 검토한 뒤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CPTPP에는 국영기업 규제, 환경 분야 이슈 반영 등 기존 FTA보다 강화된 부분이 꽤 있다는 점도 우리로서는 신중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특히 국영기업 규제 부문의 경우 참가국 국영기업이 민간기업과 공정하게 경쟁하도록 규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보조 등 비상업적 지원으로 인해 상대국에 피해를 줬을 경우 일정 절차를 거쳐 정부 지원을 제한하게 한 것이다.
한국전력, 가스공사, 석유공사 등 덩치가 큰 공기업이 이 기준에 포함되면 수출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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