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의 참새방앗간] 나쁜남자

입력 2018-03-09 09:00   수정 2018-03-09 09:17

[윤고은의 참새방앗간] 나쁜남자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나쁜남자 신드롬'이란 게 있다. 신사적이지 않고, 퉁명스러우며 차가운 남자에게 여자들이 이상하게 끌리는 것을 말한다.
많은 드라마가 남자 주인공으로 이런 캐릭터를 내세워 재미를 봤다. 당연히 반전이 있어야 한다. 겉으로는 나쁜남자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사실은 속이 깊고 배려심이 있으며 순정으로 채워진 남자인 것이다.
최근작 중에는 '화유기'의 손오공 캐릭터가 대표적이다. '나쁜남자 신드롬'에서 '나쁜남자'는 이렇듯 낭만적인 뉘앙스를 안고 있다. 안소니가 요절한 탓도 있지만, 캔디가 테리우스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도 '나쁜남자 신드롬'에 포함된다 하겠다.
그런데 웬걸, 현실은 다르다. 요즘 자고 나면 터지는 나쁜남자들의 스캔들에 현기증이 나고 욕지기가 쏟아진다. 여기에도 반전이 있다. 인면수심이다.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짐승이었다. 드라마 속 반전은 댈 것도 아니다.
TV 관찰예능에서 한없이 자상한 아빠였고, 광장에서 정의사회구현을 외치는 유력 대권주자였으며, 대학교수라는 명예로운 직함을 가진 자들이 알고 보니 위선자였고 짐승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낭만은커녕 추악한 민낯에 참담해지고 공포가 밀려온다.
일본 위정자들은 여성을 유린한 위안부에 대해 강제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범죄 혐의를 부인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이라 말문이 막히지만 오래전 일이고,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우기면서 발뺌을 해댄다.
모르긴 몰라도 현실의 나쁜남자들도 아마 일본 위정자를 공개적으로 비난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한 짓은 이들보다 더 나쁘다.
야만이 날뛰는 전쟁통도 아니고, 인권과 인간다움에 대한 고민으로 전진하는 시대에 여성을 성노리개로 취급했다. 자신의 동료, 후배, 제자, 비서를 힘으로 제압했다. 그래놓고 강제성이 없었다고, 사랑이었다고, 오래전 일이라 기억에 없다고 주장하는 파렴치함으로 철갑을 두른다.
사창가의 깡패는 첫눈에 반한 여대생에게 강제로 키스를 했고, 이후 계략을 꾸며 여대생을 사창가에 빠뜨린다. 깡패는 여대생이 서서히 창녀로 무너져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태생적인 열등감을 달래고 욕망을 채운다.
깡패는 여대생의 인생을 산산조각내는 과정을 통해 여대생을 길들인다. 두려움과 공포에 저당잡혀 자포자기한 여대생은 그렇게 세뇌당한 끝에 깡패의 여자가 된다. 영화 '나쁜남자'의 내용이다.
도대체 여기 어디에 사랑이 있단 말인가. 어디에 예술이 있고 인간에 대한 탐구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이게 영화에 머물지 않는단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방팔방에서 폭로가 나온다. 배신감과 충격으로 온몸의 뼈가 떨린다.
prett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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