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와 흙' '도쿄 최후의 날'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 출간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지난달 말 후쿠시마(福島) 수산물 수입금지 분쟁에서 일본에 패했다는 소식이 날아들자 누리꾼들은 분노했다. 외국 화장품 브랜드의 한국 법인이 제품 수입처를 일본으로 바꿨다는 뉴스도 들려오면서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했다. '후쿠시마'라는 단어가 이웃 나라에까지 드리운 그림자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3·11 대지진과 원전 사고 7년을 앞두고 일본의 반핵 전문가, 논픽션 작가, 전 총리가 쓴 책들이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소와 흙'(글항아리 펴냄)은 논픽션 작가 신나미 교스케가 죽음의 땅에서 살아가는 소들, 이들과 함께 사는 농민들을 추적한 르포르타주다.
2011년 최악의 핵 재앙이 발생하자, 일본 정부는 원전에서 반경 20km 내 가축의 안락사를 지시했다. 일부 주민과 농민들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이들은 피폭되더라도 방치된 가축을 돌보는 것이 자신들의 몫이라고 여겼다.
안락사를 피한 소들은 초원을 마음껏 뛰어다니고 점점 야생화하면서 스스로 교배하고 자식을 낳는다. 씹는 것을 일로 삼는 동물인 소들은 뛰어난 제초 역할을 한다. 이들 덕분에 땅의 황폐화도 방지할 수 있다. 저자는 "사람이 귀환하는 날까지 농지를 농지인 상태로 계속 유지하는 데 소의 역할은 크다"라면서 피폭한 소가 살아가는 의미를 발견한다.
피폭을 감수하면서도 소를 버리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특히 인상적이다. 이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전하는 것이 내 남은 인생의 의미"라고 말하며 소와 함께 피폭의 산증인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일본의 손꼽히는 반핵 운동가인 히로세 다카시의 '도쿄 최후의 날'(글항아리 펴냄)은 3·11을 조명하면서 핵의 발견이 지금의 거대 핵자본 네트워크로 이어진 과정을 파고든다.
저자는 앨라모고도에서 시행된 최초의 원폭 실험,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등 과거 원자·수소폭탄 투하로 발생한 방사능 피해의 양상과 실태를 제시한다. 우라늄·플루토늄 핵물질 연구자들부터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간 미국 세인트조지 주민들, 불안을 애써 모른 체하며 살아가는 오늘의 도쿄 시민들이 시·공간을 초월해 이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거대 핵 자본 네트워크의 계보를 따라가다 보면 "원자폭탄과 원자력발전은 쌍둥이 악마"라는 결론에 닿는다. "한국의 원자력 산업도 돈에 눈이 멀어 위험하기 짝이 없는 독주를 하기 시작했다"는 일갈도 책에 담겼다. 또다른 3·11이 올 것을 우려하는 저자는 "모든 일본인이 힘을 모아 원전 재가동과 신기지 건설을 저지하자"고 외친다.
3·11 당시 최고 책임자였던 간 나오토 전 총리는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에코리브르 펴냄)를 통해 어떻게 사고를 수습하고 탈원전을 결심하게 됐는지를 설명한다.
대재앙이 닥치기 전까지 일본 사회는 '원전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믿음을 공유했다. 일본 정부가 대재앙에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법률도 제도도 정치도 경제도 그리고 문화조차 원전 사고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움직였다. 아무런 대비가 없었다고 해도 맞다."
간 총리는 3월 11~19일 매일의 일을 촘촘히 전한다. 그는 TV를 보던 중에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을 알게 됐다. 뉴스가 나오기 전까지 '휘발성 물질이 많으니 무언가 타는 것 아니겠냐'고 한가히 말하던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은 얼굴을 감싸 쥐었을 뿐이다. "현장을 알지 못했고 관저 견해가 현장에 도달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는 간 총리의 고백에서는 끝을 모르는 심연을 마주한 무력함이 묻어난다.
간 총리는 탈원전을 결심하게 된 배경으로 "나 자신도 3·11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인간이 핵반응을 이용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무리가 있고 핵에너지는 인간 존재를 위협한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원전 정책을 놓고 갈림길에 선 우리나라에도 여러 생각할 거리를 안겨주는 책이다.
'소와 흙' 우상규 옮김. 320쪽. 1만5천 원.
'도쿄 최후의 날' 최용우 옮김. 340쪽. 1만6천 원.
'나는 왜 탈원전을 결심했나' 김영춘·고종환 옮김. 196쪽. 1만3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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