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정책연구원, 현황·쟁점 다룬 첫 사례집 발간…"법조·학계 도움 기대"
국보법 중심이던 형사사건 다양화…자녀 성(姓) 변경·北학력 인정 사례도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북한과 관련해 민사·형사·가사·행정·지적재산권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한 소송의 현황과 쟁점을 최초로 분석한 사례집이 나왔다. 그동안 북한 관련 소송을 둘러싼 이론적 연구는 꾸준히 있었지만, 실제 사례를 집대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사법정책연구원(원장 강현중)은 남북한 관계에서 비롯된 법적 문제에 관한 각종 논의를 정리한 '통일사법 정책연구'(부제:북한 관련 소송의 현황과 쟁점)를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
책자에는 북한 관련 소송의 총론과 북한의 법적 지위, 각종 법률을 비롯해 민사·가사·형사·행정·지적재산권편 등 5개 분야로 나눠 그간 제기된 소송의 현황과 쟁점을 소개했다.
북한 이탈 주민이 늘면서 증가하는 대표적인 소송은 가사사건이다.
그 중 탈북주민의 성과 본 변경을 청구하는 소송은 범죄 은닉 등과 같은 불순한 목적이 없는 한 비교적 폭넓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분석됐다. 성 변경으로 인한 혼란보다 새로운 가족의 통합 방해와 사회생활에서 겪는 불이익이 크다는 판단에서다.
탈북 여성 A씨는 자녀의 성(姓)을 남한에서 재혼한 배우자의 성으로 변경해 달라고 법원에 청구했다. 법원은 북한에 남아 있는 자녀의 친부 의견을 청취하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녀의 범죄경력과 신용정보를 조회한 뒤 변경을 허가했다.
이 밖에 남북한 '중혼'의 효력과 취소, 친자 관계 확인, 북한 주민이 남한 가족을 상대로 낸 재산상속 소송 등 다양한 사례가 실렸다.
형사 분야에서는 종래 북한의 '반국가단체' 성격으로 인해 국가보안법 사건이 주를 이뤘지만, 남북 교류협력 폭이 넓어지면서 요즘은 안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사건들이 북한 안팎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남북관계가 변화하면서 벌어질 수 있는 가상사건에 대한 분석도 담겼다.
예를 들어 북한 대남공작원 C씨는 평창동계올림픽에 참가한 응원단 일원으로 남한에 왔다. 그는 자원봉사자인 대학생 D씨와 접촉해 남한 대학교 내 학생운동 정보를 수집했다. D씨는 C씨와의 접촉 사실을 당국에 신고하지 않았다.
정부는 C씨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수집 정보가 국가기밀인지 등이 쟁점이 될 수 있다. C씨에 대해 남한이 형사사법권을 행사할 수도 있지만, 외교 특권을 부여받는 외교관과 마찬가지로 권한 행사는 자제할 것으로 분석됐다.
행정 분야에서는 조세·관세 사건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북 사이의 소득에 대한 이중과세방지 합의서'를 다룬 소송에서는 남북 합의서를 조약으로 본 건 아니면서도 법적 효력은 인정한 판결이 나왔다. 최근에는 탈북자 보호를 둘러싼 문제가 많았다.
민사편에서는 군사분계선 이북 소재 토지의 소유권, 북한이탈주민 신원 공개로 인한 위자료 청구, 납북 관련 국가 배상 등의 소송 사례가, 행정편에서는 탈북자의 학력 인정, 북한 원산지 인정 기준 등의 사례가 담겼다. 지적재산권편에서는 월북 작가 소설을 남한에서 출판한 경우, 납북된 영화감독이 북한에서 만든 영화를 남한에서 상영하고자 하는 경우, 북한 정부 산하기관이 만든 저작물을 남한 출판사가 권한 없이 제작하려 한 경우 등의 사례가 수록됐다.
연구원 측은 "일반적인 소송은 예측 가능성과 법적 안정성의 관점에서 논리의 명료성이 요구되고 판례의 잦은 변경도 자제하는 편이지만, 남북한 특수관계와 관련된 사건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가변적, 동태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고 구체적으로 타당한 결론을 끌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특징이 있다"고 강조했다.
사법정책연구원 하상익 공보판사는 "남북관계가 변하면서 북한과 관련된 소송이 늘어나고 있고 이에 대한 준비도 필요해졌다"며 "소송 관계자는 물론 학계와 법조계 실무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ae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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