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러 군정보요원 피살 사건과 무관 주장…"순전한 선전전"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 러시아가 9일(현지시간) 영국에서 발생한 전직 러시아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66) 암살 시도 사건에 자국이 개입됐다는 주장을 강하게 반박했다.
인테르팍스 통신에 따르면 아프리카를 방문 중인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열린 아프리카연합(AU) 이사회 의장 무사 파키 마하마트와의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스크리팔 독살 시도 사건에 대한 러시아 개입설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근거 없는 선전전"이라고 일축했다.
라브로프는 "우리는 단 하나의 사실도 듣지 못했다. 러시아가 배후라면 그들이 영원히 기억할 만한 대응이 뒤따를 것이란 영국 측의 격앙된 발표만 TV 방송을 통해 보고 있다. 이는 순전히 선전전이며 히스테리 조장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만일 사건 조사를 위해 정말 러시아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우리는 그러한 가능성을 검토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러시아로의) 조회를 위해선 TV 방송을 통해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할 게 아니라 사법당국 간 채널을 통해 전문적으로 요청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라브로프는 또 스크리팔 사건과 지난 2006년 발생한 영국 망명 러시아 스파이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 피살 사건을 나란히 놓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역시 러시아에 책임을 돌린 리트비넨코 사망 사건도 아직 수사가 마무리된 건 아님을 상기시키고 싶다"면서 "그들(영국 측)은 충분치 못한 근거 없는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만족했으며 이 비극과 관련된 많은 사실을 감췄다"고 비판했다.
스크리팔은 러시아 군정보기관인 총정찰국(GRU) 소속 전직 장교로 2006년 러시아 정보기관 인물들의 신원을 영국 해외담당 정보기관인 비밀정보국(MI6)에 팔아넘긴 혐의로 기소돼 13년형을 선고받았다.
스크리팔은 2010년 냉전 시대 이후 미국과 러시아의 첫 대규모 스파이 맞교환 때 풀려나 영국으로 이주했다.
그와 그의 딸은 지난 4일 오후 솔즈베리의 한 쇼핑몰 앞 벤치에서 의문의 독성물질에 중독돼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중태다.
영국 경찰은 부녀가 신경가스에 중독됐다며 이번 사건을 고의적 살해 시도로 규정했다.
영국 측은 사건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것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강력한 대응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하고 있다.
전직 러시아 정보요원으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다 영국으로 망명한 리트비넨코는 2006년 11월 런던의 한 호텔에서 방사성 물질인 폴로늄-210이 든 녹차를 마신 뒤 장기가 하나하나 망가지기 시작해 3주 만에 숨졌다.
그는 영국 정보기관 MI6에 러시아 조직범죄에 대해 자문을 제공했었다.
당시 영국 정부는 리트비넨코 살해를 러시아의 소행으로 결론 내렸다.
한편 영국 일간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이날 자국 보안 분야 소식통들을 인용해 스크리팔이 2010년 영국으로 이주한 뒤에도 외국 정보기관에 러시아에 관한 정보를 계속 넘겨줬다고 전했다.
신문은 "스크리팔이 석방됐을 때 외국 정보기관들은 그에게 관심을 보였으며 그는 일정 기간 그들에게 유용했다"면서 "스크리팔은 러시아가 어떻게 서방으로 침투하고, 어떻게 (조력자를) 포섭하며, 어떻게 방첩활동을 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서방 정보기관에 줄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한 소식통은 서방 정보기관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스크리팔과 같은 전직 정보요원들을 이용하는 일은 통상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cjyou@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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