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전속결로 '5월 회담' 결정한 트럼프…몇주 걸릴일 45분 만에

입력 2018-03-11 02:51  

속전속결로 '5월 회담' 결정한 트럼프…몇주 걸릴일 45분 만에
트럼프, 특사단에 "발표문 손질해 웨스트윙 앞서 직접 발표해달라" 부탁
문 대통령 판단과 특사단 방북 관찰내용 묻는 등 북한 진정성 점검
주미 일본대사관은 사사에 대사 작별파티 도중 빅뉴스 접해 허둥지둥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를 출발해,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5월 북핵 담판'이라는 한반도 운명을 가를 중대 사건을 성사시키고서다.
미국 현직 대통령과 북한 지도자 간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 합의는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오후 백악관에서 김 위원장의 "조기에 만나자"는 제안을 정 실장이 꺼내자마자 지체 없이 "5월 안에 만나자"고 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백악관 관리를 인용, 트럼프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특사단의 설명을 듣던 도중 말을 끊고 "그(김정은)에게 '예스'라고 전해달라"고 말했다.
정 실장과 서 원장, 조윤제 주미대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서로 쳐다봤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그러나 특사단은 이날 오후 2시 30분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면담하기 위해 백악관을 방문할 때까지만 해도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역사적인 회동이 전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정 실장은 지난 5~6일 방북 당시 김 위원장이 표명한 '북·미 정상회담 제안 카드'를 가슴에 품고 백악관을 향했지만, 여전히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 일정은 확정되지 않고 있었다.
백악관은 9일 트럼프 대통령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정도의 언급만 했을 뿐 정확한 면담 시간을 알려주지 않고 있었다.
정부 관계자는 "8일에는 맥매스터 보좌관,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등 미 행정부 고위인사들과 만나 방북 결과를 설명하기로 돼 있었다"면서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이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종합적인 판단을 한 후 9일에 특사단을 면담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의례적인 외교 수순을 단숨에 건너뛰고 갑자기 특사단을 '호출'했다. 예측을 불허하고 급한 트럼프 특유의 성격이 외교에도 그대로 드러난 파격이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특사단도 몸을 푸는 행동으로 생각하고 이날 오후 백악관에 도착해 매티스 장관, 존 설리번 국무부 부장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DNI) 국장 등 트럼프의 참모들을 만나고 있었다"며 "그러나 1시간 정도로 예정됐던 회동은 트럼프 대통령이 도중에 등장하며 예기치 못한 반전으로 이어졌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수입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집무실에 돌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특사단이 행정부 고위인사들과 확대회의를 하고 있다'는 참모의 보고를 받자마자 당장 면담하기로 했다.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오피스로 이동한 특사단의 트럼프 대통령 면담은 45분간 이어졌다. 갑작스러운 회동이어서 길어야 15분 정도 하지 않겠느냐는 게 특사단의 예상이었다.
WP는 설령 김 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이 수락되더라도 최종 결정에 도달하기까지 몇 주가 걸릴 일인데, 불과 45분 만에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짧은 시간 속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은 특사단의 설명을 경청한 뒤, 문재인 대통령의 판단 등을 물으며 북한의 '진정성' 여부를 꼼꼼히 분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전향적인) 입장이 나오게 된 배경과 북한에 가서 특사단이 관찰한 내용은 무엇인지,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 진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등 여러 다양한 질문을 했다"고 말했다.
짧은 면담에서 역사적인 사건을 만들어낸 특사단은 트럼프 대통령의 또 다른 요청에 다시 한 번 놀랐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표문을 만들어 백악관 웨스트윙(집무동) 진입로에서 직접 언론에 발표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제안을 받아들인 정 실장은 2시간 동안 맥매스터 보좌관과 발표문을 조율했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곧바로 수용한 후, 문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는 게 정부 인사의 설명이다.
오후 5시, 발표 문안 조율이 시작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직접 백악관 브리핑 룸으로 향했다. 그는 문을 살짝 열고 얼굴만 내민 채로 한국 특사단이 "대단한 발표"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또 집무실로 돌아가다 만난 ABC방송의 존 칼 기자가 대북 대화 관련 발표냐고 묻자, "그것보다 더 윗길이라 할 수 있다. 내 말을 믿어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정 실장이 웨스트윙 앞길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서 '5월 북미 정상회담'을 발표한 것은 오후 7시 5분.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을 뒤로하고 백악관을 빠져나온 것은 오후 7시 30분이었다.
특사단이 한반도 평화시대의 문이 열리는 전기로 주목받는 초대형 뉴스를 탄생시키고 전 세계에 타전되는 데는 꼬박 5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북한의 미소 외교에 현혹되지 말라'고 훈수를 두던 일본의 외교는 비상이 걸렸다. 정 실장이 백악관에서 빅뉴스를 발표하던 시간, 워싱턴주재 일본대사관에서 일본 외교관들은 사사에 겐이치로 대사의 작별파티를 하던 중이어서 매우 허둥지둥했
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 실장은 다음날인 8일 맥매스터 보좌관과 조찬모임을 갖고 북미 정상회담 후속조치를 위한 협의를 진행했고, 오후에는 미 싱크탱크의 한반도 전문가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열어 정부의 대북정책을 설명하는 것으로 공식 일정을 마무리했다.
외교 당국자는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한 첫 걸음을 내디뎠다"면서 "미국과 긴밀한 공조하에 소중한 기회를 잘 다뤄나가겠다"고 말했다.
k027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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