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보드 크로스 1차 시기 실격에 "괜찮아, 수고했어"
(정선=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 "(박)항승씨가 기문을 놓친 바람에 실격해서 조금 아쉬워요. 원래 웨이브에 조금 약하기는 한데 다음 경기가 있으니 괜찮아요."
2018 평창 동계패럴림픽에 참가한 스노보드 국가대표 박항승(31)의 아내 권주리(31) 씨는 12일 강원도 정선 알파인경기장에서 열린 스노보드 크로스 남자 상지장애 부문 1차 레이스에서 남편 박항승이 레이스 초반 기문을 놓친 실수를 하자 아쉬움에 탄식했다.
그러나 박항승은 포기하지 않고 슬로프를 타고 내려와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박항승은 전체 참가 선수 22명 가운데 1차 시기에서 유일하게 실격한 선수였다.
하지만 아내 권 씨는 금세 기운을 차렸다. 경기가 종료되고 나서 만났을 때 아쉬운 내색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권 씨는 이날 친구 김고은, 김대식 씨와 플래카드를 만들어와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플래카드에는 자신과 박항승의 이름을 넣은 구호인 '너에게 항상 승리를 주리'가 씌어 있다. 또 태극기 색깔의 머리를 한 박항승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실제로 박항승은 자신이 대한민국의 국가대표임을 자랑스럽게 여겨 이번 대회 직전 머리를 빨간색과 파란색을 곁들여 염색했다고 한다.
권 씨는 경기 전 "넘어지지만 말고 피니시라인을 통과하면 그것으로 충분해"라며 남편을 응원했다고 한다.
남편의 주 종목은 16일 펼쳐지는 뱅크드슬라롬이다. 크로스 종목은 컨디션 조절 차원에 참가하는 것으로 여기라고 남편을 다독였다.
연극배우였던 권 씨는 지인이 주선해준 소개팅에서 박항승을 처음 만났다.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가 없는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첫인상이 유쾌하고 말끔한 외모가 매력적인 남자였다고 한다.
둘은 2년 동안 친구 사이로 지내다가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박항승은 스노보드를 즐겨 타던 권 씨의 권유로 스노보드를 배운 계기로 전문 선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급기야 2014년에는 특수학교 기간제 교사 일을 그만두고 이번 평창 대회를 준비했다.
그 사이 둘은 백년가약을 맺었고, 결혼식을 스키장에서 하고, 웨딩 사진도 눈밭에서 찍었다.
박항승은 이후 하루에 8∼9시간씩 훈련에 매진한 결과, 2016년 장애인 스노보드 국가대표로 뽑혔다.
박항승은 지형지물 코스를 타고 내려오는 스노보드 크로스에 출전한 상지 장애 선수 중 유일하게 의족을 하고 있다. 허리 위쪽 장애를 가진 선수들만 참가하지만, 상지와 하지 양쪽 장애를 가진 선수는 자신이 유리한 종목을 선택할 수 있다.
의족을 한 탓에 하체가 온전한 다른 선수들보다 코스를 회전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아내 권 씨는 박항승은 웨이브 실수로 1차 시기에서 실격했음에도 "내가 이미 항승씨의 금메달인데, 메달을 못 따면 어떠냐"면서 자신의 얼굴이 그려진 금메달 모형을 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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