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후 첫 미·소 정상회담…1950년대 후반 말전쟁 후 사전 각본없이 열려
지금처럼 미국에서 비판론 무성…미 대통령 별장 초청 후 군축회담과 데탕트 이어가
(서울=연합뉴스) 윤동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의를 전격 수용한 것을 두고 "오로지 닉슨이 중국에 갈 수 있었듯, 오직 트럼프이니 북한에 갈 수 있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1972년 미·중수교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행보에 비유하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이전부터 닉슨에 곧잘 비교됐다. 러시아의 미국 대통령 선거 개입 의혹 관련 특별검사의 수사 결과에 따라 탄핵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것에 비하면 이번 비교는 긍정적인 맥락에서 거론된다.
미국 매체 '뉴요커'는 9일(현지시간)자 온라인판에서 중국 공항에 도착한 닉슨이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와 악수를 나눈 것은 "10여 년 묵은 중국의 모욕감을 치유"하는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1954년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회의장에서 확고한 반공주의자인 존 포스터 덜레스 당시 미 국무장관이 저우언라이가 내민 손을 무시한 이후 중국인들은 이를 잊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저우언라이는 닉슨에게 "당신의 악수가 25년간 세계 최대의 대양(태평양)을 건넜다. 25년간의 무소통을 극복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방북 특사단에 따르면,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과 대화하겠다며 특별히 요구한 것은 없고 "대화 상대로서 진지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물론 북한은 중국이 아니다. 북한은 또 소련도 아니지만, 신미국안보센터(CNAS)의 패트릭 크로닌 아시아태평양안보소장은 9일 포린 폴리시에서 "트럼프는 그동안 한반도에 필요했던 평화조성자"라며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의 모델로 1959년의 아이젠하워-흐루쇼프 정상회담을 들었다. 사전 대본 없이 즉흥적으로 이뤄진 점에서 닉슨-마오 회담보다 더 비근하다는 것이다.
대북 군사공격보다는 외교적 해결을 주장하면서도, 트럼프의 대북 정책은 군사공격 의도가 아니라 실제론 한국 국기의 태극 문양이 상징하는 음양의 원리와 같이 압박과 관여라는 요소를 동시에 갖춘 것이라며 트럼프를 변호해온 크로닌은 "이번에도 트럼프가 준비도 안 된 채 성급한 결정을 내렸다는 이유로 비판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트럼프-김정은 회담의 모델이 될 만한 미국의 적대국과 정상회담의 역사적 선례가 있다며 캠프 데이비드에서 마주 앉을 때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아이젠하워-흐루쇼프 회담을 가리켰다.
아이젠하워-흐루쇼프 회담은 냉전 시작 후 처음 이뤄진 미국과 옛 소련 간 정상회담이었다.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간 말 전쟁은 1950년대 후반 미·소간 말 전쟁을 방불한다.
당시에도 지금처럼, 적국 지도자와 정상회담을 갖는 것에 대해, 특히 대통령 별장에 적국 지도자를 초청하는 것에 대해 비판이 무성했다.
소련이 1956년 반소 헝가리 혁명을 무력진압하고 1958년엔 헝가리 혁명 지도자 임레 나지를 처형한 사실을 들어 "손에 이런 피를 묻힌 사람이 그런 자리에 초대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한 유명 언론인은 쓰기도 했다.
크로닌은 "그러나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흐루쇼프는 미국을, 그리고 대통령 별장을 방문했다"며 이 회담이 동서 냉전을 끝내지는 않았지만, 긍정적인 기류가 지속하면서 미·소간 군축회담과 데탕트(긴장완화)로 이어졌고 종국엔 소련의 붕괴를 낳았다"고 설명했다. "트럼프의 이번 수는 역사적 근거가 있는 것이며 조심스럽긴 하지만 지지할 만하다"고 크로닌은 덧붙였다.
그는 문재인,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핵전쟁까지 거론되던 분위기를 극적으로 반전시켰지만 "앞으로 남은 길은 길고도 불확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트럼프-김정은 회담은 역사적인 순간이 될 것이며 한국전의 종식으로 가는 노정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기대했다.
yd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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