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새해 연휴 앞 '달러대란'…"12시간 기다려 1천불 환전"

입력 2018-03-12 17:04  

이란 새해 연휴 앞 '달러대란'…"12시간 기다려 1천불 환전"
이란 리알화 급락으로 달러화 사재기
미 압박으로 이란 경제 불확실성 높아져 외환시장 불안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테헤란 남부 환전소가 몰린 페르도시 거리엔 11일(현지시각) 동이 트기 전부터 붐비기 시작했다.
오전 7시께가 되자 환전소 창구 앞에는 수십m의 줄이 예사였다.
주말부터 시작되는 새해 연휴 노루즈를 맞아 달러를 사려는 사람들이었다.
이란은 조로아스터교의 전통을 이어받아 매년 춘분이 한 해의 시작이다. 노루즈 연휴는 보통 2∼3주 이어지는데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이란인이라면 모두 해외로 나간다.
이 때문에 노루즈 연휴가 다가오면 달러화 수요가 늘어나 환율이 올라가게 마련인데 올해는 '대란'이라고 부를 정도로 품귀현상이 극심하게 빚어지고 있다.
마무드 씨는 "새벽 3시에 환전소에 나왔다"면서 "지난주엔 12시간을 기다려 겨우 1천 달러를 환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달러화가 희귀해지자 환전소에서는 한 명에 1천 달러까지만 바꿔주고 있다.
그것도 여권과 비행기 표, 방문국 비자, 출국세 납부 증명서를 보여줘야 한다. 그나마도 터키처럼 이란인이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나라는 환전 한도가 500달러다.
외국 여행을 가는 실수요자에게만 달러를 바꿔주는 것이다.
이런 한도 탓에 복잡한 환전소 앞에는 부모가 데려온 어린아이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10개월 된 아이를 안은 알리레자 씨는 "한 명에 1천 달러만 환전해 주기 때문에 젖먹이까지 데려왔다"면서 "아이 몫으로 1천 달러를 더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줄을 선 사람들에게 "돌라, 돌라"(달러의 이란어 발음)라면서 은밀히 접근하는 불법 환전상과 이들을 단속하려는 사복 경찰의 조용한 숨바꼭질이 숨 가빴다.
페르도시 거리에 모인 이란인들은 외국인만 보면 무작정 "달러 있느냐"고 물어볼 만큼 달러를 구하려고 애를 태웠다.



중앙은행과 시장환율이 다른 이중 환율제인 이란은 최근 환율이 사실상 세 가지가 됐다.
중앙은행의 공식환율과 정부가 틀어막은 시장환율, 그리고 실거래 환율이다.
올해 노루즈를 앞두고 달러화가 시중에 크게 모자란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되지만 이란 리알화의 가치가 급락한 것이 모든 이유의 출발점이다.
달러화 대비 이란 리알화의 시장가치는 지난 1년간 30%나 떨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이란 강경 정책으로 이란 외환시장과 실물 경제의 불확실성과 불안이 커진 탓이다.
자국화 가치가 급락하는 속도가 은행 이자율의 배가 넘게 되자 달러화에 투자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들은 불안한 자국화 대신 안전 자산인 달러화를 사서 '장롱'에 쌓아뒀다.
이란 정부는 지난달부터 환율 급등을 막으려고 불법환전상 90여명을 무더기로 체포하고 '큰 손' 명단을 파악해 국세청에 통보하는 강제 수단을 동원했다.
자국화 가치가 계속 하락할 것으로 본 환전상들도 높은 환율에 달러화를 매입했는데, 정부가 인위적으로 환율을 통제하자 달러화를 시장에 풀지 않는다고 한다.
이란 중앙은행은 은행의 돈이 고금리 때문에 실물 경제로 흘러들어 가지 않는다고 판단해 기준금리를 내렸는데 이런 정책이 오히려 '달러 사재기' 현상을 부추겼다.
달러화 품귀에 이란 정부는 외화 보유고가 충분하며 환율은 안정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시장은 이에 동의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예년엔 노루즈 연휴가 끝나면 달러화 수요가 줄어 환율이 떨어지곤 했는데 올해 이란 리알화는 더 큰 산을 넘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핵합의를 재협상해야 한다면서 5월12일까지 이를 수용하라고 압박했다. 이란은 재협상은 절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협상하지 않으면 핵합의를 파기하겠다고 위협했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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