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권정당 도약 꿈꾸는 프랑스 극우 국민전선, 갈지자 행보 빈축

입력 2018-03-13 08:00  

수권정당 도약 꿈꾸는 프랑스 극우 국민전선, 갈지자 행보 빈축
당명까지 바꾼다지만…미 극우논객 배넌 초청하는 등 핵심지지층에 대해 '미련'
주류 우파진영과 연대도 염두…공화당 등 중도우파는 '얽히고 싶지 않아'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이 당 이름까지 바꾸기로 하는 등 수권정당으로의 도약을 모색 중이지만, 이런 목표에 어긋나는 갈지자 행보로 빈축을 사고 있다.
핵심 지지층인 극우세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비주류 소수정당의 한계를 여실히 노출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전선(Front National·FN)은 지난 11일(현지시간) 극우세력의 영향력이 강한 북부 산업도시 릴에서 전당대회를 열고 마린 르펜 당 대표를 차기 대표로 재신임했다.
르펜은 수락 연설에서 새 당명으로 '국민연합'(Rassemblement National)을 제시했다. 이 이름은 향후 2∼3개월간 전 당원 우편 찬반투표를 거쳐 확정된다.
새 이름은 국민전선의 극우 이미지를 벗어내 차기 대선에 다시 후보로 나서려는 르펜의 기획 중 하나다.
주류세력에 대한 '반대'의 의미가 강했던 '전선'(Front)을 당의 이름에서 빼는 대신, 포용과 통합을 뜻하는 '연합'을 집어넣음으로써 반체제 소수정당의 이미지를 떨쳐내겠다는 의도다.
이런 기획의 연장 선상으로 국민전선은 이날 르펜의 아버지이자 창당자인 '원조 극우' 장마리 르펜의 명예총재직을 표결 끝에 박탈했다.
르펜은 아버지이자 정치선배인 장마리 르펜의 반복되는 유대인 혐오와 인종차별, 나치의 학살을 부정하는 발언 등으로 갈등을 빚어오다 2015년 그를 당에서 쫓아내고 명예총재 지위만 유지하도록 해왔다.
르펜은 당명 변경 외에도 유럽연합(EU)과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당론의 수정 등 대대적인 쇄신을 모색 중이다.
이미 르펜의 이런 입장 변화로 당내 심각한 내분이 일었다. 르펜의 오른팔이었던 플로리앙 필리포 당 부대표가 르펜과 갈라선 뒤 우익색채가 뚜렷한 정당을 출범시키는 등 프랑스 극우세력의 '분화'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르펜은 이런 '변신'을 꾀하면서도 핵심 지지층인 극우세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전대 첫날인 10일에는 '트럼프의 오른팔'로 불렸던 미국의 극우 논객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가 르펜의 초청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연설에서 "역사는 우리 편이다. 인종주의자라는 평가를 명예의 배지처럼 여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르펜이 유대인 혐오와 인종차별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아버지를 쫓아내고 대중정당으로의 변모를 꾀하는 것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발언이었다.
FN의 당원 알린 베르트랑은 영국의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배넌이 여기 온 것이 놀랍다. 그는 우리가 현재 보여주려는 것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르펜도 이날 연설에서 "새 이름의 '연합'은 통합을 뜻한다. 국민 대다수가 에너지의 결집을 희망하는 이때, 이 이름은 조국을 가슴에 품은 사람들에게 우리 쪽으로 합류하라는 외침"이라고 포장했지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연설 대부분을 세계화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개방경제 정책을 비난하는데 치중했다.
정치분석가 안토니오 바로소는 FT 인터뷰에서 "극우를 넘어 외연을 확대하겠다는 목표와 달리 연설은 핵심 지지층에 호소하는 내용이었다"면서 "'연합'의 정신에 걸맞지 않았다"고 혹평했다.
새 당 이름에 '연합'을 넣은 것은 중도우파인 공화당과의 연대를 통해 수권정당으로 도약하고 이를 발판으로 르펜이 차기 대권에 도전하기 위한 포석이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지난 1월 기자회견에서 르펜은 최근 오스트리아 극우 정당이 집권 우파세력과 연정을 구성한 것에 고무돼 "정당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수단이다. 과거의 향수에 젖어있지 말고, 이제 야당에서 수권정당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 제1야당인 공화당을 비롯한 프랑스의 전통적인 중도우파 진영은 여전히 국민전선과 얽히는 것을 꺼리는 기류가 매우 강하다.
2차대전 당시 나치에 점령당하고 부역 정권까지 세운 치욕스러운 역사를 기억하는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극우세력에 대한 반감이 뿌리 깊다.
여론조사기업 칸타소프르가 지난 7일 발표한 최신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유권자의 16%만이 르펜이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르펜에 대한 유권자의 호감도는 1년 전 조사에서의 같은 응답(24%)보다 크게 낮아졌다.
yongl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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