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경부암 일으키는 HPV 원인…전체 편도암의 70%가 'HPV 양성'
"편도 붓고 입안 궤양 잘 낫지 않거나 목 통증 있으면 병원 찾아야"
(서울=연합뉴스) 선동일 서울성모병원 암병원 두경부암센터장 = #. 이모(44)씨는 평소 건강관리에 관심이 많아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술도 업무상 필요할 때만 소량으로 마셨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귀통증, 인두통, 목 이물감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단순한 감기라 생각하고 복합감기약을 먹었지만, 몇 주 동안 부은 목이 가라앉지 않았다. 급기야 동네 병원에서는 왼쪽 목 안에 뭔가 만져지니 큰 병원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큰 병원을 찾아 편도 조직검사를 한 결과, 인유두종바이러스(HPV) 감염에 의한 편도암이었다. 이씨는 로봇 팔을 입으로 넣어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종양을 제거하는 '로봇 경구강 광범위 절제술'로 암 조직을 떼어내는 한편 남은 암세포에 대해 항암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현재는 완치 판정을 받아 외래에서 추적 관찰 중이다.
미세먼지와 환절기 기온 차이로 목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일반적인 치료로도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입이 벌어지지 않는 증상이 있다면 이씨처럼 두경부암 중 하나인 편도암(구인두암)을 의심해 볼 수 있다.
두경부암은 세계적으로 매년 65만명의 새로운 환자가 발생한다. 전체 암을 통틀어 6번째로 흔하다. 이 중에서도 편도암은 구강 내 목젖의 양측에 있는 구개편도에 발생한 악성 종양을 말한다.
그동안 가장 큰 위험 요인은 흡연과 음주였다.
발암물질인 흡연은 편도 조직의 세포 변이를 초래할 수 있다. 또 심한 음주는 간 기능을 떨어뜨리고 여러 발암물질의 대사를 저해함으로써 발암의 빈도를 높이게 된다. 특히 술과 담배를 함께하는 경우에는 편도암 발생률이 더욱 증가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장 큰 위험 요인으로 떠오르는 게 자궁경부암의 원인으로 알려진 인유두종바이러스(HPV)이다. HPV 감염 두경부암 환자는 50대 이상의 중·노년층 남성에서 최근에는 젊은층과 여성으로 발생 빈도가 넓어지고 있다. 전 세계의 암 발생 중 5.5%가 HPV 때문으로 추산되면서 두경부 분야에도 HPV가 중요 관심사항이 됐다.
HPV 감염 두경부암의 증가는 HPV 양성 편도암 증가로도 이어졌다.
최근 미국에서 나온 연구결과를 보면, 주로 흡연과 음주가 발병원인인 HPV 음성 편도암은 1988년과 2004년 사이 50% 감소한 데 반해 HPV 양성 편도암은 1980년대 20%에서 2014년 70%로 급증했다. 미국에서는 2020년을 기점으로 HPV에 감염된 편도암 발생률이 자궁경부암 발생률을 추월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국내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다. 서울성모병원이 2000∼2017년 사이 편도암으로 치료받은 환자 231명를 조사한 결과 65.5%(151명)가 HPV 양성이었다.
HPV 관련 두경부암은 주로 혀, 목구멍 편도부위에 발생이 잦고, 상피나 점막의 손상 부위를 통해 침투한다. HPV 양성 두경부암(편평상피암)은 HPV 음성 암과 비교해 분자유전학적, 역학적, 임상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HPV 양성 편도암의 경우 음성보다 3∼5세 정도 젊은 나이에 발생하고, 남성이 3배가량 환자가 많다. 성생활, 마리화나(대마)와 연관성이 높은 대신 흡연이나 음주와의 관련성은 떨어진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HPV 양성 편도암은 HPV 음성보다 수술과 항암 방사선 치료에 반응이 좋아 생존율이 높다는 점이다.
하지만 백신으로 예방 가능한 자궁경부암과 달리 편도암 예방 백신은 아직 연구 중이다. 따라서 HPV에 감염되지 않도록 평상시 건전한 성생활을 지키고, 흡연과 과음을 삼가는 게 바람직하다.
최근 미국, 호주 등에서 나온 역학조사 결과를 보면 평생 성생활 파트너와 구강성교 파트너의 수가 많고, 첫 성경험 연령이 빠를수록 HPV 감염의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편도암은 위내시경과 같은 일반 건강검진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증상이 늦게 나타나기 때문에 종양이 많이 자란 뒤에야 진단되는 게 특징이다.
통증은 주로 종양 부위에 궤양이나 염증이 있거나, 신경을 침범했을 때 발생한다. 음식물을 삼킬 때 통증이 심해지고, 귀로 뻗치는 듯이 아픈 연관통도 생길 수 있다. 다만, 열은 없으며 목에 혹이 만져지기도 한다. 종양이 아래턱의 뼈(뼈막)를 침범하거나 날개근(익상근)까지 침범하면 턱을 움직이기 힘들다. 종양이 크게 자라서 기도의 대부분을 막으면 숨이 차거나, 숨을 쉴 때(특히 숨을 들이쉴 때) 잡음이 들리는 증상이 발생하기도 한다.
편도암은 광범위한 수술 절제가 유일한 치료법이었으나, 최근에는 항암화학요법, 방사선치료, 분자표적치료를 포함한 다양한 치료법이 시도되고 있다. HPV 양성 편도암 환자의 경우 얼굴이나 기관의 기능을 보존하기 위해 수술 대신 항암화학요법과 방사선치료를 적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초기암의 경우는 재건 수술 없이도 기능을 보존할 수 있다. 수술 기법도 많이 발전해 현미경을 이용한 레이저 절제술이나 로봇을 이용한 기능 보존수술을 시행하기도 한다.
이중 '경구강 로봇수술'의 경우 환자 입으로 수술용 로봇 팔이 들어가 목 안 깊숙이 위치한 종양을 안전하게 제거할 수 있다. 때문에 외부에 수술 흔적이 남지 않고, 수술로 인한 상처도 최소화된다.
다행히 편도를 제거한 후의 합병증은 미미하다. 갑상선을 제거하고 나면 평생 호르몬제를 복용해야 하지만, 이련 면역기능 문제도 없다. 다만 편도부위 부분암을 제거한 후에도 미세암이 남아 있거나 잠재적 전이 가능성이 있다. 때문에 예방적으로 림프까지 잘라내는 경우도 있다.
편도암을 조기진단 하면 70∼80%의 생존율을 보이지만 이를 넘기면 생존율이 40% 정도로 크게 떨어진다.
그렇다고 편도가 붓는 것을 암이라고 단정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입안에 궤양이 생겼는데 잘 낫지 않는 경우, 목에 통증이 있거나 삼키는 것이 곤란한 경우, 목에 덩어리가 만져지거나 목이 부었는데 3주 이상 증상이 지속하는 경우에는 꼭 병원을 찾아야 한다.
◇ 선동일 교수는 1987년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1∼2003년 미국 존스 홉킨스 의대 교환교수를 지냈다. 현재 가톨릭의대 이비인후과 과장 및 암병원 두경부암센터장을 맡고 있다. 후두암, 인두암, 구강암, 타액선암, 비부비동암, 갑상선암 등 두경부종양의 권위자다. 진단과 수술뿐 아니라 음성클리닉, 연하장애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두경부종양 환자가 수술 후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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