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 출간
"예술가에게 광기 있어야…문학하는 자식들에게 전범 되고파"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그 아이(작가 한강)가 이미 저를 뛰어넘었다고 생각하고 삽니다. 가장 큰 효도는 승어부(勝於父)예요. 아버지보다 더 잘한다는 뜻이죠. 우리 세상이 그렇게 되어야 싹수가 있는 세상이겠죠."
작가 한승원(79)은 13일 산문집 '꽃을 꺾어 집으로 돌아오다'(불광출판사) 출간으로 연 기자간담회에서 '딸인 한강 작가에 관한 질문을 더 많이 받을 때 기분이 나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당연히 (기분이) 좋다"며 이렇게 답했다.
이날 오전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2016년 영국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데 이어 올해 '흰'으로 다시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승원 작가의 기자간담회에서는 딸 한강에 관한 질문이 쏟아졌다.
한승원 작가는 "딸 강이의 세계를 보건대 굉장히 신화적인 데 바탕을 하고 있다. 나도 신화적인 바탕이 있지만 좀더 리얼리즘 쪽에 뿌리하고 있다면 강이의 세계는 훨씬 환상적인 리얼리즘이랄까, 신화적인 것에 뿌리하고 있어서 나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세계더라. 그 아이 작품을 읽으면서 '아, 나 공부 더 해야되겠어' 그런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또 이번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후보작인 한강의 '흰'에 관해 "시이기도, 소설이기도, 에세이기도 한 '흰'을 정독했다"며 이 작품의 바탕이 된 가정사를 잠깐 소개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세상에 태어난 지 몇 시간 만에 숨을 거둔 아기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그는 "눈물겹고 슬픈 일인데, 첫딸을 하늘로 날려보냈다. 흔히 팔삭둥이라고 하는데, 열 달 다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아이라 요즘 태어났으면 인큐베이터에 들어갔을 거다. 워낙 가난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집에서 낳아 우리 마나님이 '죽지 마라, 죽지 마라' 그랬다고 하는데, 그게 ('흰'에) 들어가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또 이번 산문집에 담은 글 중 하나인 '흰, 그게 시(詩)이다'(198쪽)를 소개하며 "'흰'에 관해서는 강이(한강) 생각과 내 생각이 일치하더라. 나도 백목련 꽃을 보며 건너편 무당집 신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리고 시를 썼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삶과 세계, 우주에 대한 성찰을 담은 이번 산문집의 말미에 부록으로 '병상 일기- 사랑하는 아들딸에게 주는 편지'를 실어 진한 부성애를 드러내기도 했다.
"작년에 독감으로 거의 죽을 뻔해서 3개월 동안 입원하고 아프기도 했는데, 병상 일기로 '병을 미끼로 시와 신을 낚는다'는 글과 시들을 썼습니다. 우리 아들딸들이 전부 다 문학을 하는데, 그들 앞에 내가 어떤 전범이 되어야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쓴 것입니다."
이 산문집에는 작가의 젊은 시절 사진과 자식들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도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그는 한강의 아버지로 최근 더 많이 조명받았지만, 그 이전에 이미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한국문학의 거장이다.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김동리에게 문학을 배웠다. 1966년 단편 '가증스런 바다'로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목선'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등단 이후 50여년간 30여 편의 장편소설과 80여 편의 중단편소설, 6권의 시집과 10여 권의 산문집을 냈다.
그는 이번 산문집 제목에 관해 "꽃을 꺾는다는 것은 우리가 인생의 큰 어떤 것을 성취하고자 길을 나선다는 것이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그 성취를 통해서 자기 인격을 완성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나도 어려서는 참 의지가 박약했지만, 계속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소처럼 목에 멍에를 걸고 어떤 일을 만들어서 끌고 나가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해서 하나하나 이룩해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시포스가 끊임없이 바윗덩어리를 굴리고 올라가듯이 나도 (작가로서) 내 운명을 짊어지고 산등으로 올라가고 굴러떨어지면 다시 밀고 올라가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내가 늘 모토로 하는 말이 '글을 쓰는 한 살아있을 것이고 살아있는 한 글을 쓸 것이다'라는 말이다"라고 덧붙였다.
작가로서, 예술가로서 지녀야 할 자세에 관해서는 "난 젊어서부터 벽에다 검정 붓글씨로 '광기'라고 써놓고 살아왔다. 좋아한다는 것보다 강한 것이 사랑한다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보다 더 강한 것은 미친다는 것이다. 미치면 성취된다. 나는 날 '내 눈빛이 하늘의 별빛과 달빛을 만든다'고 얘기한다. 예술가는 광기를 지녀야 하고 젊은이들은 도전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지방에서 살며 문예지 청탁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작품 활동에 매진해온 지난날을 돌아보며 후배 작가들에게 조언했다.
"저는 타고난 소설가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원고 청탁을 받고 소설을 쓰지 않아요. 써서 쌓아놨다가 청탁이 오면 주고 그랬죠. 내 소설을 어느 잡지에 발표하고 싶으면 원고와 함께 반송용 우표를 봉투에 넣어 잡지사에 보내 '실을 만한 가치가 있으면 실어달라'고 했어요. 그렇게 보내면 2-3개월 만에 실어주더라고요. 평도 좋았고요. 그러니까 제가 다작의 작가가 된 거죠. 저는 '청탁이 오지 않으니 소설을 쓰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것은 소설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22년 전 고향인 전남 장흥으로 내려가 지은 작은 집 '해산토굴'에서 쉼 없이 글을 써온 그는 또 한 편의 장편소설을 최근 완성해 올 가을에 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라고 했다.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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