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받는 외교책사 정의용…'한국의 키신저' 별명도 얻어

입력 2018-03-14 11:42   수정 2018-03-14 11:46

주목받는 외교책사 정의용…'한국의 키신저' 별명도 얻어

문 대통령 의중 헤아리며 남북-북미 정상회담 끌어낸 산파역
美맥매스터-中양제츠와 '핫라인'…"전략·실행력·친화력 삼박자 갖춰" 평가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의 산파역을 맡은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외교가의 '뜨는 별'로서 주목받고 있다. 항간에서는 1970년대 초 미·중 수교를 이끌어낸 미국의 헨리 키신저와 비견된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의 명(命)을 받아 움직이는 참모이지만, 불과 일주일 사이 북·미·중의 '스트롱맨' 정상들을 잇따라 만나 한반도 평화외교 해법에 대한 '컨센서스'를 끌어낸 외교적 수완은 높이 평가받을만 하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으로 해외언론도 그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
사실 정 실장은 외교관으로서의 경력으로만 봤을 때 북핵 문제와 북미간 정무현안에 정통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주로 통상과 다자 분야에서 잔뼈가 굵어, 지난해 5월 처음 임명됐을 때 국방과 외교 분야를 아우르는 국가안보실장으로서 과연 적임이냐는 시각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이력서 상의 평가일 뿐이고 실제 함께 근무했던 외교관들 사이에서는 '르네상스 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다방면에 걸쳐 능수능란한 수완을 갖췄다는 평이 나온다. 문 대통령의 뜻을 정확히 헤아려 큰 그림을 그려내는 전략적 마인드와 치밀하게 일을 완성해나가는 실행력, 그리고 어떤 상대라도 편안하게 대하며 설득을 해내는 친화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외교안보 브레인으로서의 삼박자를 모두 갖춘 책사(策士)"라고 말했다.
이번에 남북-북미 정상회담이라는 세기의 외교이벤트를 연출해낸 데에는 정 실장이 미·중의 카운터파트와 꾸준히 '래포'(Rapport·친밀한 인간관계)를 쌓은 것이 주효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교조직보다는 정상 직속 NSC(국가안보회의) 조직이 '톱 다운(Top Down)' 방식으로 큰 틀의 외교를 다뤄나가는 세계적 추세를 감안하면 정 실장이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맺은 친분관계는 한반도 평화외교를 추진하는 데 있어 결정적 '자산'이 됐다고 볼 수 있다.
정 실장과 맥매스터 보좌관은 한마디로 '통(通)하는 사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사드 문제로 한미관계가 냉랭하던 지난해 6월 정 실장은 극비리에 방미해 맥매스터 보좌관의 집으로 찾아갔고, 거기서 심야까지 5시간에 걸친 '마라톤 대화'를 벌인 일화가 유명하다. 이후 현안이 생길 때마다 '정의용-맥매스터' 라인은 양국 관계의 중요한 소통 창구로 기능해왔다. 서로 '케미'가 맞지 않은 듯했던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 달에 한 번 꼴인 11차례에 걸친 전화통화를 하고 세 차례 정상회담을 한 것도 두 참모간의 강력한 유대가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중국이 양회(兩會)기간임에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을 비롯한 '외교 빅3'가 잇따라 정 실장을 면담하고 전례 없는 '환대'를 해준 것 역시 정 실장과 양 국무위원간의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 실장은 지난 12일 시 주석과 회담하기에 앞서 양 국무위원과 댜오위타이(釣魚台)에서 3시간에 걸쳐 회담하고 이어 다시 1시간30분에 걸쳐 오찬했다.
정 실장의 주된 이력을 상징하는 '통상' 경험도 고도의 기싸움과 협상력이 요구되는 남북미 삼각 정상외교에서 빛을 발했다고 볼 수 있다. 국제 통상협상을 하려면 실무적 전문성은 물론이고 '밀고 당기는' 다양한 협상의 기술과 치밀한 전략, 두둑한 '배짱'이 필요하다는 게 정설이다. 정 실장은 한미간 통상이슈가 크게 부각됐던 1990년대 중반 외무부 통상국장을 맡은 데 이어 한중 '마늘분쟁'이 처음으로 터졌던 2000년 통상교섭조정관으로서 통상 갈등을 풀어내는 데 상당한 공을 세웠다. 외무부 대변인을 거치면서 다져진 '화술'도 정 실장의 특장으로 꼽힌다.
여기에 2000년대 초반 주(駐) 제네바 대사로서 국제안보와 군축, 인권 등 다자외교를 해본 경험도 이번 정상외교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크게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 실장은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주 제네바 대사를 마친 뒤 지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계에 투신한 정 실장은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의원연맹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국제 정치계에도 폭넓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다양한 경험과 외교적 수완을 토대로 전인미답의 외교적 성과를 거둬낸 정 실장이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아 보인다. 정상 차원의 '의지'를 살려 역사적 첫 북미 정상회담의 드라마를 만들어내려면 실무를 중심으로 하는 더욱 정교하고 치밀한 외교적 후속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외교부 등 정통 외교관계 부처에 힘을 더 실어주고 대미·대중 외교의 '실력파'들을 확충하는 것이 긴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정 실장은 13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대선에 여념이 없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대신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회담한데 이어 14일 유리 아베리야노프 러시아 안보회의 제1부서기(국가안보실 부실장), 유리 우샤코프 대통령 외교담당 보좌관 등을 만난 뒤 귀국길에 오른다.
rhd@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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