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잉-사브, 수주전 돌입…방사청 "수의·경쟁계약 다 열어놔"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한국 해군의 해상초계기 도입 사업 수주를 놓고 미국과 유럽업체가 바삐 움직이고 있다. 3년 전 한국의 공중급유기 도입 사업에서 수주전을 펼쳤던 미국과 유럽이 이번에도 또 만났다.
사업비 1조9천억원대의 해상초계기 사업을 따내기 위해 당시 쓴잔을 마셨던 미국 보잉은 '포세이돈(P-8A)'을 후보 기종으로 내밀었다. 유럽은 스웨덴 다국적 기업 사브(SAAB)의 '소드피시(황새치)'를 후보 기종으로 제시해 '일합'을 겨루겠다는 태세다.
두 업체는 올해 초 방위사업청의 요구에 따라 후보 기종에 대한 자사 입장을 담은 서류를 지난달 말 제출한 것으로 17일 알려졌다. 한국의 해상초계기 사업 참여를 공식적으로 밝힌 셈이다. 이후 두 업체의 경쟁이 벌써 과열 양상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실물 있다, 없다" 설왕설래
방사청은 지난달 7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 주관으로 제109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해상초계기 2차사업 추진기본전략안을 심의한 끝에 국외 구매로 결정했다. 오는 2020년을 목표로 현재 해군이 운용 중인 P-3보다 체공시간이 길고 무장을 많이 탑재하는 해상초계기를 다른 나라에서 구매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진행되는 첫 대형무기 도입 사업이다.
유력한 후보 기종 중 하나인 P-8A는 현재 운용 중인 기체이다. 반면 소드피시는 현재 개발 중이다. 방사청과 보잉 측에서 소드피시가 아직 실물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사브 측은 최근 자사가 개발해 첫 비행에 나선 조기경보기인 '글로벌아이'에 대잠수함 탐지 능력을 보강하도록 첨단 장비를 장착해 해상초계기로 업그레이드하겠다고 설명한다.
사브의 한 관계자는 "캐나다 항공기 제조업체인 봄바디어사의 글로벌 6000 제트기를 기반으로 하는 차세대 초계기인 글로벌아이가 이번 주 첫 비행을 했다"면서 "해상초계기와 80%가 동일한 이 차세대 초계기 버전에 대잠수함 능력을 강화해 한국에 제안할 것이다. 실체가 있다"고 주장했다.
3년 전 공중급유기 선정 당시에도 실물평가 여부를 놓고 말들이 많았었다.
당시 유럽 에어버스D&S의 A330 MRTT는 실물평가를 받았으나, 개발 중인 보잉 KC-46A와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MMTT 등 2개 기종은 시뮬레이터와 자료 등으로 평가했다. 결국 A330 MRTT가 기종으로 낙점됐다.
방사청과 보잉이 해상초계기 '실물평가'를 주장하는 것은 이런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브 측은 기본 플랫폼(글로벌아이)이 있는 데도 실물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있다.
방위사업법 시행령 제24조2항(구매의방법)은 "국외에서 생산된 군수품을 구매할 때에는 외국에서 운용 중이거나 개발 중인 무기체계를 일부 개조하여 구매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시행령을 근거로 한다면 사브 측의 주장이 틀렸다고만 할 수 없다.
우리 해군의 해상작전헬기로 선정된 영국제 와일드캣(AW-159)도 한국군이 원하는 무기체계를 달지 않은 상태에서 평가를 받았다. 최대 무장 장비를 달고 이륙할 수 있는 중량을 테스트하고자 한국군이 요구하는 장비의 무게 만큼의 모래주머니를 달고 평가를 진행했다고 해서 '방위사업 비리'로 내몰리기도 했다.
군의 한 관계자는 "와일드캣 시험평가 때 모래주머니를 달았다고 해서 애꿎은 관련자들만 홍역을 치렀다"면서 "와일드캣이 도입된 이후 해군 내에서 최상의 해상작전헬기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 업체가 제시하는 판매 대수도 관심거리
우리 해군은 해상초계기로 P-3C 8대와 P-3CK 8대 등 16대를 보유하고 있다. 군 안팎에서는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지리적 환경과 북한 잠수함 위협을 고려해 최소 32대, 최대 60대 가량의 해상초계기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일본은 P-1, P-3C 등 100대 안팎의 해상초계기를 운용 중이다.
방사청이 제시한 사업비 규모만을 놓고 보면 보잉 P-8A 기종은 최소 5대, 최대 6대 가량을 살 수 있다는 것이 군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보잉이 노르웨이와 인도에 판매한 대당 2천500억∼2천800억원을 기준으로 하면 5∼6대 가량을 구매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반면 사브 측은 사업비 1조9천억원이면 최소 10대 정도는 한국에 판매할 수 있다는 의사를 우리 군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사브 측은 한국이 추진 중인 한국형 전투기(KF-X) 개발 사업과 관련해 자사가 보유한 AESA(다기능위상배열) 레이더 등 핵심기술을 반대급부로 한국에 넘겨줄 수 있다는 입장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방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보잉과 사브 측이 제시하는 조건을 보면 표면적으로 드러난 경쟁의 핵심은 6대냐, 10대냐로 보인다"면서 "총사업비 한도 내에서 많은 물량을 제시하면 구매국으로서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P-8A는 B-737 항공기를 기본 플랫폼으로 하고 있다. 현존 최상의 해상초계기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민항기 시장에서 B-737 계열은 도태되는 추세라는 주장도 있다. 도태되는 플랫폼을 기본으로 하면, 후속 군수지원 등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최대 이륙중량이 8만5천820㎏에 달하는 것이 P-8A의 장점이다. 8시간 이상을 공중에 떠 있어야 하고, 유사시 적 잠수함을 공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해상초계기의 특성이기 때문에 최대 이륙중량이 클수록 연료와 무장 장비를 많이 탑재할 수 있게 된다.
P-8A는 승무원 9명을 태우고 최대 10시간 동안 7천500∼8천㎞를 비행할 수 있다. 하푼과 어뢰, 기뢰, 소노부이 등을 탑재하고 탐지거리 최대 800㎞의 AN/APY-10 레이더를 갖추고 있다. AN/APY-10은 공중, 해상 모두 탐지가 가능한 멀티 모드 조기경보 레이더이다.
B-737보다 크기가 작은 '글로벌아이'를 기본 플랫폼으로 하는 소드피시는 최대 이륙중량이 4만4천132㎏이다. 이륙중량으로만 보면 연료와 무장 장비를 적게 탑재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사브 측은 MU90 경량대잠어뢰와 청상어 대잠어뢰, 스웨덴서 개발한 공대해 및 공대지 유도탄(RBS15F·무게 800㎏)을 비롯한 음파탐지기 소노부이 등을 탑재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다 탐지거리 최대 592㎞의 AESA 레이더를 탑재한다는 것이다. AESA 레이더는 360도를 탐지한다.
승무원 7명을 태우고 최대 12시간 동안 9천600㎞를 비행할 수 있다는 것이 사브 측의 주장이다.
해군의 한 관계자는 "북한의 SLBM 위협에 즉각 대응하려면 도입되는 해상초계기는 내부 장비와 무장 수준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내부에 첨단 장비가 얼마나 들어가 있고, 적 잠수함을 즉각 공격할 수 있도록 탑재되는 무장 수준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사청 "수의계약 또는 경쟁계약 모든 가능성 열어놔"
해상초계기 도입 사업과 관련, 방사청은 "수의계약 또는 경쟁계약 등 모든 구매 방안을 열어놓고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방사청의 한 관계자는 "경쟁계약을 하려면 실체가 있거나 개발 중인 것이어야 한다"면서 "P-8A는 실체가 있고, 소드피시는 개발하겠다는 서류를 제출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방사청은 추가로 두 업체에서 서류를 제출받아 검토한 다음 5월 중으로 방위사업추진위원회를 열어 판매국 정부보증인 FMS(수의계약) 또는 경쟁계약 방식으로 할지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군 일각에서는 미국과 유럽 업체가 사업 참여를 강력히 희망하는 만큼 2개 기종을 '링' 위에 올려놓고 공정하게 평가를 진행해 더 우수한 첨단 장비 탑재와 가격 인하 등의 효과를 거둬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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