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UBC '지젤'로 고국 무대에…형과 나란히 '알브레히트' 역 연기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객석에서 터지는 탄성 소리요? 당연히 무대 위에서도 다 들리죠. 사실 점프 장면은 세계 어디서나 박수를 유독 많이 받는 걸 알기 때문에 저도 최대한 높이 뛰려고 노력해요. 하하."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김기민(26)의 점프는 시간과 중력이 멈춘 듯하다는 찬사를 받는다. 체공 시간이 독보적으로 길고, 내려오는 모습도 유독 사뿐하다.
작년 11월 '백조의 호수' 내한 공연에서도 그가 점프를 할 때마다 객석 이곳저곳이 술렁이는 이색적인 광경이 연출됐다.
그는 이런 탁월한 테크닉을 앞세워 2011년 마린스키 발레단 입단 두 달 만에 주역 발탁, 2015년 수석무용수 승급, 2016년 무용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 상 수상 등으로 한국 발레리노의 이정표를 새롭게 쓰고 있다.
오는 4월 6~15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되는 유니버설발레단(UBC)의 '지젤'에 객원 출연하는 그를 전화로 먼저 만났다.
러시아에서 전화를 받은 그는 "어린 저를 믿어주고 주역 기회까지 줬던 곳이 UBC"라며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이번에 시간이 맞아 '지젤' 공연에 함께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젤'은 낭만 발레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 시골 처녀 '지젤'이 귀족 청년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졌다 배신당한 충격으로 죽지만, 유령이 되어서도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알브레히트를 지켜주는 내용이다. 윌리(결혼을 하지 못하고 죽은 처녀)와 같은 신비로운 존재, 떠다니는 영혼을 표현하기 위한 순백색 군무 등으로 사랑받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알브레히트를 연기하는 김기민은 "'지젤'에는 탄성이 터질 만큼 화려한 테크닉은 나오지 않는 것 같다"며 웃었다.
"대신 '지젤'에서는 여성 무용수를 바람에 날리는 낙엽처럼 표현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파트너를 한 번에 확 들어 올리는 건 차라리 쉬운데, 이 작품에서는 여성 무용수가 서늘한 바람처럼 느껴지도록 천천히 들어 올리고 내려야 합니다." 그는 같은 발레단 퍼스트 솔리스트 예카테리나 오스몰키나와 출연한다.
특히 오는 21~25일 공연되는 국립발레단 '지젤'에는 그의 친형이자 국립발레단 솔리스트 김기완(29)이 출연(25일)해 같은 역을 맡는다.
이들 발레리노 형제는 각각 러시아와 한국에서 인터넷 전화로 사생활부터 작품 이야기까지 모든 걸 공유한다.
"서로의 춤을 배우기도 하고 서로 지적하기도 해요. 최근엔 '지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죠. 형이 2막 중 한 장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이라면서 마린스키 해석 등을 묻더라고요. 열심히 동작도 보여주고 제 생각도 말했는데, 결국 제 해석에 동의를 안 하더라고요. 왜 물어봤나 몰라요."(웃음)
그는 "서로의 알브레히트를 참고하며 자신의 캐릭터를 점검하기도 한다"며 "김기민의 알브레히트, 김기완의 알브레히트는 분명 다른 매력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굳이 색깔로 표현한다면 형은 짙고 아름다운 파란 색, 저는 그것보다 조금 더 매력 있는 보라색이 아닐까 싶어요. 하하."
세계 최정상 발레단의 수석무용수 자리까지 꿰찬 그에게 더 이루고 싶은 꿈을 물었다.
그는 "지금 사는 방식이 정말 행복하다"고 답했다. "원래 꿈이 여러 발레단에 초청돼 세계에서 공연하는 무용수가 되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지금 그 이상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세계 최고의 발레단에 들어왔고, 그 발레단은 늘 세계 각지의 초청을 받고 있어요. 그 안에서 더 많은 작품을 익히고, 이미 경험했던 작품들도 더 완벽하게 익히고 싶다는 소망이에요."
그는 '카르마'(업)를 어느 정도 믿는 편이라고 했다.
"제가 준 만큼, 제가 연습한 만큼 되돌아오는 것 같아요. 안 돌아올 수도 있겠고, 결국 이루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전 일단 미련하게 해보는 편이에요. 안 되면 그때 가서 포기하면 되잖아요."
'마린스키 별'을 바라보며 오늘도 어디선가 구슬땀을 흘리고 있을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내가 바른 생각을 지키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면 다른 것들은 알아서 따라오고 다 도와주더라고요. 이것저것 너무 고민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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