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으로 사실감 끌어올린 공포체험…영화 '곤지암'

입력 2018-03-19 18:54   수정 2018-03-19 23:39

1인칭으로 사실감 끌어올린 공포체험…영화 '곤지암'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1970년대 후반 환자들이 집단으로 자살하고 원장은 실종됐다는 '곤지암 정신병원'. 건물은 폐허가 된 채 그대로 남아있고 건물을 둘러싼 각종 괴담들만 퍼진다.
영화 속에서 '곤지암 정신병원'은 건물이 들어선 땅 밑에 일제강점기 몰살당한 독립군의 유해가 묻혀있다거나, 사실은 국가 차원에서 비밀리에 운영한 고문시설이었다는 설이 파다하다. 원혼이 가장 밀집된 공간인 듯한 402호의 문을 열려고 시도만 해도 목숨을 잃거나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다는 괴담도 퍼졌다.
'곤지암'은 누구나 들어봤을 법한 곤지암 정신병원을 모티프로 한 공포체험 영화다. '호러타임즈'라는 이름의 체험단 멤버 7명이 한밤 중 병원에 잠입해 괴담의 실체를 확인하고,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생중계한다는 설정이다.



멤버들은 각자 카메라를 들거나 몸에 장착하고 원장실·실험실·집단치료실 등 내부 시설을 차례로 소개한다. 오랫동안 방치된 건물 내부는 폭격을 맞은 듯 어지럽다. 그리고 문제의 402호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여러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나며, 그 강도는 점점 커진다.
멤버들은 병원으로 가는 길에 물놀이를 즐기는 등 처음엔 대학생 엠티 가는 분위기였다. 건물에 진입해서도 일부는 인터넷 방송 조회수에 관심을 보이거나 공포를 '조작'하며 괴담 따위 믿지 않는다는 티를 낸다. 그러나 저절로 문이 닫히거나 물건이 움직이는 일이 잇따르자 꺼림칙함은 극도의 공포로 바뀐다.
영화는 '블레어 윗치'(1999)를 기점으로 호러영화의 한 하위장르로 자리잡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또는 파운드 푸티지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실시간 방송이기 때문에 영상을 제3자가 발견할 필요는 없고, 부적을 동원한 강령의식 등 토속적 장치를 일부 차용했지만 기본 얼개는 같다. 심령현상에 반응한다는 전자기장 측정기 역시 비슷한 외국 저예산 호러에 종종 등장하는 도구다.



공포영화 마니아에게는 이미 낡은 형식일 수 있다. 그러나 영화는 몇몇 지점에서 차별화를 시도한다. 대부분 장면을 배우들 몸에 장착된 카메라 촬영분으로 채웠다. 실제 인물들의 시선으로 병원 내부를 비추다가, 이마 근처에 달린 카메라로 겁에 질린 표정을 생생히 잡는 식이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호기심을 가져봤을 법한 곤지암 정신병원을 주무대로 삼은 점도 새롭게 다가온다.
관객들로 하여금 허구를 최대한 실제상황으로 믿도록 만드는 게 페이크 다큐의 관건이라면, 영화는 꽤 성공적으로 보인다. 체험단은 대부분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신인 배우들로 채워졌다. 평범한 20대가 서서히 겁에 질려가는 과정을 비교적 실감나게 연기했다. 버퍼링 등 실제 인터넷 방송처럼 보이게 하는 효과도 사실감을 높인다.



한국 공포영화의 걸작으로 꼽히는 '기담'(2007)의 정범식 감독은 전작의 미장센과 원한·복수 등 이야기 요소들을 모두 버리고 오로지 체험단이 맞닥뜨린 상황과 현장음이 자아내는 공포에 집중한다.
그러나 탁구공 소리마저 공포의 도구로 활용하는 치밀한 연출과 무관하게, 이들이 공포체험이 얼마나 무서울지는 대부분의 호러물이 그렇듯 관객 각자의 내성에 달렸다.
영화는 경기 광주시에 실존하는 곤지암 정신병원을 모티프로 삼았지만, 환자들이 집단 자살하거나 원장이 실종된 사건은 없었다. 병원이 문을 닫은 때도 1970년대가 아닌 1996년이다. 촬영은 부산 해사고등학교 건물에서 했다. 영화는 28일 개봉 예정이지만, 실제 병원 건물주가 법원에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상태다.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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