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작가 최신작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미나 기자 =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하며 미국의 현존하는 최고 작가로 꼽히는 토니 모리슨(87)의 최신작을 한국어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모리슨이 2015년 발표한 장편소설 '하느님 이 아이를 도우소서'(문학동네)가 번역 출간됐다.
전작 '술라', '빌러비드', '자비' 등에서 미국 인종주의의 뿌리와 차별·억압의 역사를 탐구해온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오늘날 젊은 세대의 이야기를 통해 여전히 끈질기게 남아있는 차별과 억압의 잔재를 보여준다.
이 소설은 지금까지 모리슨이 쓴 열한 편의 장편소설 중 유일하게 21세기 현대를 배경으로 한다. 작가는 일견 자유롭고 당당해 보이는 젊은 흑인 여성들에게서 숨겨진 상처와 고통의 흔적을 세심하게 포착해낸다.
소설의 주인공은 유난히 검은 피부를 갖고 태어난 여성 '룰라 앤'이다.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그의 아버지는 괴물을 보듯 아기를 보고 어머니의 외도를 의심하며 집을 나가버린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혼자 기르게 되지만, 피부색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딸에게 따뜻한 눈길이나 손길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 엄마라고 부르지도 못하게 하고 '스위트니스'라 부르라고 한다.
그렇게 강인하게 자란 룰라 앤은 이십 대 초반에 큰 성공을 거둔다. 화장품 회사에 들어가 뛰어난 실력을 발휘하며 커리어우먼으로 자리잡는다. 과거와 깨끗이 작별하기 위해 이름도 '브라이드'로 바꿨다. 어린 시절에는 검은 피부가 놀림감이 됐지만, 이제 사람들은 그녀의 까만 피부와 매력적인 외모를 찬양한다. 세상이 어느 정도 바뀌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브라이드에게는 가슴 속에 몇 개의 상처가 남아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거짓으로 한 교사를 아동 성폭행범이라고 지목한 죄가 있다. 그녀의 거짓 고발로 그 교사는 괴물로 몰려 감옥에서 15년을 보냈다. 그녀는 돈으로나마 보상을 해주려 그 교사가 출소한 날 찾아가지만, 교사의 참았던 분노가 폭발해 심한 폭행을 당한다.
사실 그녀를 더 괴롭히는 기억은 어린 시절 진짜 아동 성폭행범이었던 집주인의 범행을 목격하고도 어머니가 침묵을 강요하는 바람에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아픈 기억들이 뒤엉켜 그녀를 괴롭히자, 그녀는 자신에게 가장 의미 있는 존재였다가 갑자기 떠나버린 남자친구 부커를 찾으러 떠난다. 소설의 후반부에는 부커가 오랫동안 지닌 상처의 내막도 드러난다.
작가는 브라이드와 그녀의 친구 브루클린, 그녀의 어머니, 부커, 그밖의 주변 인물들의 목소리로 화자를 바꿔가며 이야기를 다각도에서 보여준다.
처음엔 가해자로 여겨진 괴물 교사가 알고 보니 피해자였음이 밝혀지고, 부커가 왜 브라이드를 매몰차게 떠났는지도 나중에 이해된다.
이 모든 이야기의 열쇳말은 폭력과 차별, 특히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끔찍한 성범죄와 학대이다.
브라이드는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보살핌을 받긴 했지만, 일종의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고도 할 수 있다. 또 학교에서는 적나라한 인종차별과 왕따를 겪었고, 성폭행 장면을 직접 목격하기도 한다.
그녀가 산중에서 조난당해 의탁한 히피 가족의 수양딸은 불과 예닐곱살의 나이에 포주 같은 어머니로부터 성매매를 강요당했다고 고백한다. 부커가 평생 짊어진 상처도 아동성폭행 범죄와 관련이 있다.
작가는 이런 폭력과 차별이 한 사람의 인생에 얼마나 짙은 어둠의 그늘을 드리우는지 역설한다. 또 주변에 엄연히 존재하는 폭력을 직시하지 않는 사람들의 둔한 감각을 꼬집는다.
"늘 그랬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라고, 이웃들은 늘 그렇게 말했다.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할 거예요." 그 상투적인 표현은 어디에서 왔을까? 왜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한다고 할까? 너무 마음이 약해서 병을 옮기는 벌레의 목숨은 빼앗지 못하지만 아이의 생명에는 기쁘게 도끼질을 할 수 있다는 뜻일까?"(156쪽)
정영목 옮김. 248쪽. 1만3천500원.
mi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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