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악용 업체 누가 고용했나"…여야 진실공방 비화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 파문이 차기 총선을 앞둔 말레이시아 정치권으로까지 확산할 조짐을 보인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5천만명의 페이스북 개인정보를 빼돌려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후보의 당선을 도왔다는 의혹을 받는 영국 데이터 분석회사가 2013년 말레이 총선에도 개입한 정황이 나왔기 때문이다.
21일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영국 데이터 분석회사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CA)'는 홈페이지를 통해 자사가 말레이시아 케다 주에서 집권여당연합 국민전선(BN)이 진행한 맞춤형 메시지 캠페인을 도왔다고 밝히고 있다.
이 회사는 "성공적 선거운동을 펼친 결과 BN은 (2013년) 13대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둬 케다 주를 (당시 야권연합인) '파카탄 라크얏'으로부터 탈환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CA는 말레이시아 슬랑오르 주에 현지 지사를 두고 있으며, 영국 민영방송인 채널4는 CA 관계자를 인용해 이 회사가 말레이시아와 멕시코, 브라질 등지에서 유령회사를 통해 선거에 개입해 왔다고 보도한 바 있다.
문제는 CA가 미국에서와 마찬가지로 페이스북에서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고용주를 위한 맞춤형 선거전략을 개발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말레이시아에선 전체 인구 3천200만명 중 3분의 2가 넘는 2천200만명이 페이스북 계정을 갖고 있다.
다만, 말레이시아의 복잡한 선거 지형 탓에 이러한 의혹은 여야간 진실 게임으로 비화하는 모양새다.
2013년 말레이시아 총선 당시 케다 주에서 BN의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했던 인물이 현재 야권의 총리 후보로 차기 총선을 준비 중인 마하티르 모하마드(93) 전 총리의 아들 무흐리즈(54)이기 때문이다.
마하티르 전 총리는 2015년 국영투자기업 1MDB에서 수조원의 나랏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에 휘말린 나집 라작 현 총리의 퇴진을 요구하다 오히려 축출돼 야권으로 전향했다.
이 과정에서 케다 주 총리를 맡고 있던 무흐리즈 역시 당적이 박탈됐다.
이와 관련해 말레이시아 총리부는 전날 성명을 통해 "BN은 현재에도 과거에도 CA나, 모회사인 SCL 그룹과 계약을 맺은 적이 없다"면서 "2013년 총선과 관련한 CA의 조언은 무흐리즈 개인을 위한 것이었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흐리즈는 "나는 CA란 회사를 모르며 그들을 고용한 적도 없다. 아마 그들은 총리부나 BN 수뇌부에 상담을 제공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CA는 이러한 논란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현 의회의 임기가 만료되는 올해 8월 이전 차기 총선을 치러야 한다. 현지 정치권에서는 4월 말이나 5월 초에 총선이 치러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번 총선은 말레이시아 사상 유례 없는 박빙 승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BN은 1957년 말레이시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61년간 장기집권을 해왔지만, 나집 총리의 비자금 조성 의혹의 여파로 입지가 흔들렸다. 야권은 한때 나집 총리의 후견인이었던 마하티르 전 총리를 총리 후보로 추대하고 정권교체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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