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서 대출서 반납까지 50년…日역사학자의 특별한 여정

입력 2018-03-22 07:58   수정 2018-03-22 09:13

고문서 대출서 반납까지 50년…日역사학자의 특별한 여정
아미노 요시히코의 '고문서 반납 여행' 출간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아미노 선생, 이것은 미담입니다. 쾌거입니다. 이제까지 문서를 가져갔다가 반납하러 온 사람은 당신이 처음입니다."
농민이 아니라 어민, 산민, 상인 등 비농업인 중심의 일본 중세사 연구 방법론인 '아미노 사학'을 개척한 역사학자 아미노 요시히코(網野善彦·1928∼2004)는 1982년 11월 일본 나가사키(長崎)현 쓰시마섬(對馬島)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그는 문서와 장부 10책을 넣은 커다란 보자기를 들고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을 찾았다. 1950년 8월 17일 그의 동료가 연구를 위해 빌렸던 문서를 돌려주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는 생각지도 못한 칭찬에 안도하면서 "문서를 반납하지 않는 것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고백했다.
신간 '고문서 반납 여행'은 아미노 요시히코 전 가나가와대 교수가 자신과 동료들이 1950년대에 빌린 고문서를 약 50년에 걸쳐 반납한 여정을 담담하게 기록한 책이다.
저자가 고문서를 빌린 것은 일본이 패망한 뒤인 1950년이다. 그해에 도쿄대 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일본상민문화연구소가 운영하는 연구실인 쓰키시마(月島) 분실에 들어가 근무를 시작했다.
옛날 문헌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해독할 능력도 없었던 저자는 각지를 다니며 고문서를 수집했다. 대부분 1년 뒤에 반납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가져왔지만, 한 해 만에 수많은 문서를 연구하기는 불가능했다.
결국 고문서들은 쓰키시마 분실에 뒤죽박죽으로 쌓였다. 그런데 일본 정부가 1954년 연구소에 대한 지원을 끊으면서 고문서 수집이 끝났다. 문서 중 일부는 수산자료관으로 이관됐으나, 나머지는 연구원들의 직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저자는 1981년에 다시 일본상민문화연구소를 발족하고 고문서의 주인을 찾아주는 작업을 벌였다. 문서 중 상당수는 쥐가 파먹어 훼손됐고, 행방이 묘연한 것도 있었다.
그는 일본에서 두 번째로 넓은 호수인 가스미가우라(霞ヶ浦)호, 이시카와(石川)현 와지마(輪島), 미야기(宮城)현 게센누마(氣仙沼) 등을 다니며 문서를 반납하는 한편 학문적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저자는 "고문서를 정리·연구하고 조사하면서 일본 근세사와 일본 사회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다"며 "근세사회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자리 잡은 사농공상 개념이 완전히 허구이며, (일본)사회의 실상을 잘못 보게 하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책은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한국과 일본의 전쟁 관련 문헌을 중점적으로 연구해온 김시덕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가 번역했다.
출판사 글항아리가 기획한 '오래된 책을 찾아 자박자박'의 첫 번째 출판물이다. 김 교수의 '오래된 책이 말을 걸어왔다'(가제), '잊혀진 일본인' 등이 뒤이어 나올 예정이다. 264쪽. 1만4천원.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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