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짓누르는 영화…관객 몰아가고 싶어"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영화 '7년의 밤'이 28일 개봉한다. 원작인 정유정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워낙 널리 읽혔고, '광해, 왕이 된 남자'로 1천232만명을 동원한 추창민 감독의 신작이어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다. 2016년 봄 촬영을 마쳤지만 2년 가까이 개봉이 늦춰지면서 뒷말도 많았다.
이야기는 7년 전 발생한 우발적 살인사건에서 시작한다. 세령마을의 댐 관리팀장으로 부임을 앞둔 최현수(류승룡 분)는 사택을 보러 가던 길에 갑자기 튀어나온 여자아이를 차로 친다. 술 한잔 걸친 상태였던 최현수는 놀란 나머지 아이를 호수에 던져버린다.
아이는 마을 대지주 오영제(장동건)의 딸이었다. 아빠의 계속된 폭력을 피해 도망치던 길에 사고를 당했다. 오영제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총동원해 수색작업을 벌인 끝에 딸의 시신을 찾는다.
그때부터 딸을 잃은 아빠의 복수가 시작된다. 오영제에게 쫓기던 최현수는 또다른 끔찍한 사건을 내고 만다. 오영제의 복수는 그 사건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 최현수의 아들 최서원(고경표)에게까지 향한다.
2011년 출간된 원작 소설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는 평을 받았다. 7년 뒤 완성된 영화는 마치 문학작품처럼 읽힌다. 스릴러지만,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를 과감히 버리고 인물들의 복잡한 감정을 들어다보는 데 집중한다.
우유부단한 성격의 소시민이었던 최현수는 순간의 사고로 모든 걸 잃을 위기에 처한다. 죄의식과 자책감이 최현수를 압도한다. 그러나 제 아들만은 살려야 한다는 부성애가 최현수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피와 악의 대물림을 끊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작용한다.
오영제의 부성애 역시 평범하진 않다. 학대하던 딸이 남의 손에 의해 살해된 사실을 알았을 때의 감정은 상상하기 어렵다. 부성애와 소유욕 사이를 오가는 오영제의 마음은 복수에 대한 집착으로 변한다.
영화는 두 아버지의 비틀린 부성애를 바탕에 깔고 후회·자책·불안·공포·죄의식을 뒤섞는다. 그 결과 둘 다 광기에 사로잡힌다. 내내 어두운 스크린이 뿜어내는 음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가 관객을 압도한다. 이런 정서를 끌어올리고 이어가는 데는 음악과 음향이 한몫 한다. 영화의 음울함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관객에게는 과도하고 불쾌하게 들릴 수도 있다.
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추창민 감독은 "관객을 몰아가고 싶었다. 어차피 이 영화는 짓누르는 영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짓누름이 그래도 흥미롭다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어떻게 만들게 됐나.
▲ 5년 전 소설책을 받았다. 처음엔 못 하겠다고 했다. 내가 딸을 키우고 있고, 여러 명의 화자가 각자 시선으로 이야기하는 소설이라 영화로 만들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1년 정도 흐르고 소설을 다시 읽었다. 원작에 더해 또다른 얘기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읽으니까 다른 길이 생각나더라.
-- 다른 길은 뭔가.
▲ 원작은 두 아버지의 대결이 중심이다. 내가 가장 매력을 느낀 부분은 '피의 유전' 같은 것이다. 최현수의 기억을 따라가면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가 있다. 오영제는 폭력적인 사람이지만 그 이면에는 사랑을 갈구하는 한 여자가 있다. 우리 각자의 기억과 트라우마가 결과를 다르게 만들 수 있다. 어떤 현상의 이면에 또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게 이 영화를 한 이유다.
-- 장동건이 오영제 캐릭터에 어울리나.
▲ 악역을 많이 하는 배우에게 맡기기보다는 신사적이고 선해 보이는 사람이 하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다.
-- 오영제의 복수심은 부성애에서 나온 건가, 아니면 학대에 대한 죄의식이 작용했나.
▲ 둘 다 아니다. 오영제는 권력과 돈, 외모, 머리까지 갖췄다. 그런데 진짜 사랑하는 여자만 없다. 가장 중요한 핵심 하나가 맞춰지지 않는 것이다. 그 결핍이 오영제를 비뚤어지게 만들었다. 누군가 자신에게 일으킨 흠결을 참을 수 없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건 아내에 대한 사랑이고 딸은 그 부산물이다. 도망간 아내를 닮았다는 이유로 아들을 학대하는 아버지들이 실제로 있다. 그런 비상식적인 일이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다.
-- 성악설에 관한 이야기인가.
▲ 원작에선 특히 오영제가 악을 타고난 사람으로 표현됐다. 하지만 나는 성악설을 부정한다. 악에도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악해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가는 이야기다. 두 남자의 복수극을 기대하고 보는 분들이 있고, 보고 나서는 부정(父情)에 관한 이야기라고도 한다. 둘 다 맞는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운명을 극복하는 이야기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피를 극복하고 싶은데, 아들에게는 물려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피의 유전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위해서 부자 관계를 활용했다.
-- 스릴러로서 긴장감은 어디서 오나.
▲ 초반에 범인이 누군지 나오고 어디 있는지도 뻔히 보인다. 이 영화는 비밀이 하나씩 벗겨지는 이야기다. 인간 밑바닥에 감춰진 서사를 하나둘 벗기면서 찾아가는 이야기다. 그걸 알아가는 게 긴장감을 주는 것 같다.
-- 음악과 음향의 효과도 큰 것 같다.
▲ 관객을 몰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짓누르는 영화다. 관객이 지치기도 하고 답답해하기도 한다. 끝까지 밀어붙이는 게 이 영화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다. 많은 분들이 숨쉴 구멍도 없다고 한다. 그 짓누름이 그래도 흥미롭다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 영화를 문학적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이 있었나.
▲ 컸다. 웹툰의 깊이와 영화, 문학의 깊이는 각자 다르다. 문학작품을 영화로 옮기기로 한 이상 그 깊이를 포기할 수 없었다. 서사가 깊은 문학을 가져왔다면 그 장점을 영화에 잘 녹여내는 게 중요하다. 이야기와 화면, 연기 모두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 그런 욕심에서 가장 공들인 장면은.
▲ 최현수의 아버지가 등장하는 장면들. 월남전 이야기는 내가 어렸을 때 읽은 문학에 자주 나왔다. 뻔하거나 익숙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버릴 수 없는 유산 같은 것이다. 그 장면들이 굳이 필요하냐는 분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애정이 있다.
-- 촬영에 6개월 가까이 걸렸다.
▲ 장소 이동이 많았다. 전국을 다니면서 어울리는 장소를 찾았고, 새벽까지 안개를 기다렸다가 찍기도 했다. 호수의 물안개는 대부분 컴퓨터 그래픽이 아니고 현실의 안개다. 안개가 예상되는 시간을 사전에 확인해서 찍었다.
-- 전작 때문에 흥행에 부담이 있겠다.
▲ '광해'의 흥행은 두 번 경험할 수 없다. 또 하겠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광해'로 대접을 했으니 이번엔 또다른 음식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니 전혀 다른 장르를 택하게 됐다. 익숙한 장르가 아니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시간도 걸리고 품이 많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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