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되는 세계유산 등재 실패…"치적 삼는 풍토 바뀌어야"

입력 2018-03-22 19:36   수정 2018-03-22 20:05

거듭되는 세계유산 등재 실패…"치적 삼는 풍토 바뀌어야"
한국의 서원·한양도성 철회 이어 한국의 갯벌 신청서 반려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다 보니 등재 실패가 거듭되고 있습니다. 세계유산은 문화재를 보호하는 것이 목적인데, 과도한 관심이 쏠리면서 침몰하는 것 같아요."
세계유산을 연구하는 한 교수는 22일 '한국의 갯벌'의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가 반려됐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세계유산의 근본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한국의 갯벌'은 충남 서천, 전북 고창, 전남 신안, 전남 보성·순천에 있는 갯벌 약 1천㎢를 아우른다. 여러 멸종위기종의 서식처이고 세계에서 가장 두꺼운 펄 퇴적층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했으나 첫 번째 관문도 넘지 못했다.
세계유산 12건을 보유한 한국이 최근 등재 과정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고 있다. 2016년 '한국의 서원', 지난해 '한양도성'의 세계유산 등재를 자진 철회한 데 이어 이번에는 지도가 불완전하다는 이유로 '한국의 갯벌' 등재 신청서가 반려됐다.
앞서 '한국의 서원'과 '한양도성'은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이코모스) 전문가 패널 심사에서 각각 '반려'와 '등재 불가' 판정을 받았다.
이코모스는 각국이 등재하려는 유산을 심사해 '등재 권고'(Inscribe), '보류'(Refer), '반려'(Defer), '등재 불가'(Not to inscribe) 등 네 가지 권고안 중 하나를 선택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당사국에 전달한다.



세계유산센터는 한국이 지난 1월 등재를 신청한 '한국의 갯벌' 서류를 받은 뒤 지도의 축척이 작아 세계유산 신청 구역과 완충지대를 명확히 알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청서가 완전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교수는 "세계유산 등재 신청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지도이고, 지도가 결격 사유가 되는 경우가 잦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서원, 한양도성, 한국의 갯벌이 세계유산 등재에 실패한 원인은 각기 다르지만, 문화재청과 등재 추진 기관이 등재에 필요한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OUV)를 제대로 부각하지 못하고 준비를 여유 있게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세계유산 등재는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와 공무원들이 오랫동안 숙의하고 토론해야 결실을 볼 수 있는데, 세계유산을 일종의 치적으로 삼는 풍토가 조성되면서 조급증을 불렀다는 것이다. '한국의 갯벌'의 경우 작년 7월 문화재위원회 회의에서 '보류' 판정을 받았고, 추가 논의와 보완을 거쳐 11월에야 신청 대상으로 확정됐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갯벌' 신청서 반려를 계기로 세계유산 등재 사업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학계 관계자는 "세계유산위원회에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것보다 차라리 나을 수도 있다"며 "차근차근 준비해 똑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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