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올라타니 덜컹덜컹, 고개 들면 별 무리 쏟아지네

입력 2018-03-22 20:37   수정 2018-03-22 20:42

버스 올라타니 덜컹덜컹, 고개 들면 별 무리 쏟아지네
4DX VR 영화 '기억을 만나다' 관람해보니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주인공이 여자친구와 통화하는 장면. 객석 의자가 덜컹거린다. 고개를 오른쪽으로 90도가량 돌리니 버스 기사 뒷모습이 보인다. 다시 왼쪽으로 180도 꺾자 주인공과 반대편 통로 쪽 자리에 앉은 승객이 눈에 들어온다. 맨 뒷자리에 앉은 승객 두세 명도 스쳐 지나간다.
VR(가상현실)과 4DX를 결합해 새로운 영화적 체험을 제공하는 '기억을 만나다'가 31일 개봉한다. 움직임과 청각·후각 등의 감각을 자극해 관람을 돕는 4DX 상영은 이미 보편화했지만 VR까지 접목한 극장용 영화는 처음이다.
22일 오후 시사회에서 공개된 '기억을 만나다'는 관람보다는 체험에 가까웠다. 360도 시야각으로 입체영상을 구현하는 VR영화가 아직 낯선 탓이기도 하다. 칸·베를린·선댄스 등 유수의 영화제들이 VR 섹션을 따로 마련하고 여러 장르의 작품을 앞다퉈 소개하고 있지만, 일반 관객이 접할 기회는 많지 않다.



뮤지션을 꿈꾸는 우진(김정현 분)이 어느 카페의 야외무대에 선 장면에선 손님들이 우진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우진이 연주하는 동안에도 고개를 숙이면 우진의 발끝만 보이고, 옆을 바라보면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손님이 눈에 띈다.
우진과 연수(서예지)가 각자의 방에서 처음 통화하는 장면은 VR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판타지 느낌을 낸 시퀀스다. 우진의 방만 비추던 화면이 서서히 뒤로 빠지면서 오른쪽 아래에 연수의 방도 보인다. 둘의 방을 우주가 감싼다. 하늘을 바라보면 별 무리가 쏟아진다.
작품 속 공간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부분을 볼 수 있지만, 이야기 흐름을 놓칠 위험도 있다. 주인공들이 옥탑방 평상에 앉아 노래 가사를 주고받는 장면에서도, 고개를 들면 남산타워가 보일 뿐 인물들은 시야에서 사라진다.
연출을 맡은 구범석 감독도 이런 한계를 인정했다. 구 감독은 시사회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관객이 자율성을 갖고 관람하는 게 VR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며 "제작자가 의도하지 않은 이야기로 빠지거나 감정의 흐름을 포착하지 못할 수 있다. VR 제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기억을 만나다'는 러닝타임 38분짜리 로맨스 영화다. 4DX와 VR이 그동안 주로 체험에 초점을 맞춰 액션·공포·다큐멘터리 영화에 활용된 점을 감안하면 의외다.
구 감독은 "많은 분이 VR 하면 어드벤처나 롤러코스터를 떠올린다. 하지만 연출자로서 VR의 가장 큰 장점은 감정의 교감"이라며 "스스로 주인공과 함께 호흡하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고 앞으로 이런 장르를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4DX 효과 역시 자극보다 교감을 돕는 데 집중한다. 유영건 CJ 4DPLEX 이노베이션 기획팀장은 "감정선을 섬세하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노력했다"며 "시각적 요소만으로는 반쪽짜리 가상현실에 불과하다. 청각과 후각 등 효과가 결합해야 가상과 현실이 구분되지 않는 진정한 가상현실"이라고 했다.
보통의 장편영화처럼 러닝타임을 늘리기 어려운 점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꽤 무거운 고글 형태의 관람용 장비 HMD(Head Mounted Display)를 얼굴에 걸치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야 해 피로도가 높다. 구 감독은 "여건상 아직 길게 제작하지 못한다. 38분이면 VR영화로는 초장편에 속한다"며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짧아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더 길면 힘들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구 감독은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과 '황금나침반' 등 할리우드 영화의 시각효과 작업을 하다가 VR영화 제작에 뛰어들었다. 곽경택 감독이 총괄 프로듀서를 맡아 지원했다.


곽 감독은 "기존의 영화 관객은 그냥 앞만 보고 앉아있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 그러나 VR영화는 공간 안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기 때문에 몸을 움직여야 한다"며 "영화의 문법을 변형해 적용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 다른 매체"라고 설명했다.
구 감독은 "VR영화를 하기 전까지는 프레임 안에서 보여지는 영상만 보고 자랐다. 관객으로서도, 창작자로서도 프레임에 익숙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며 "새로운 콘텐츠를 받아들이는 신세대는 VR영화를 흡수하는 능력이 우리와는 다를 것 같다"고 기대했다.
영화는 CGV용산아이파크몰 4DX 상영관에서 볼 수 있다. 관람료는 6천원으로 책정됐다.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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