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징·심사정·김득신·김정희 회화 등 9건 보물 지정 예고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조선의 묵죽화(墨竹畵·수묵을 사용한 대나무 그림) 대가로 꼽히는 탄은(灘隱) 이정(1554∼1626)이 감색 비단에 금니(金泥·금물)로 그린 그림이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이정이 1594년 12월 12일 충남 공주에서 임진왜란 발발 직후 다친 팔로 매화, 난초, 대나무를 묘사한 '이정 필 삼청첩(三淸帖)'을 포함해 조선시대 회화와 불경, 서적 등 9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23일 밝혔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삼청첩은 식물의 형상을 정교하고 우아한 필치로 담아내 조선시대 사군자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세종의 고손인 이정은 유덕장, 신위와 함께 조선 묵죽화의 대가로 불렸다. 대나무 외에도 난초와 매화를 잘 그렸고, 글씨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전한다. 이정의 작품이 보물로 지정 예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간송미술문화재단에 있는 이징(1581∼?), 심사정(1707∼1769), 김득신(1754∼1822), 김정희(1786∼1856)의 서첩과 그림도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이 가운데 이징, 심사정, 김득신의 작품은 지금까지 보물로 지정된 예가 없다.
'이징 필 산수화조도첩(山水花鳥圖帖)'은 이징이 그림을 담당한 관청인 도화서 교수로 활약하던 때인 1652년에 제작된 화첩이다. 화조화, 산수화, 영모화(翎毛畵·깃이나 털이 있는 동물을 그린 그림)와 함께 이식, 이명한의 시문 37수가 수록됐다. 시와 글씨, 그림을 모은 시서화 합벽첩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유물로 알려졌다.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현재(玄齋) 심사정의 '심사정 필 촉잔도권(蜀棧圖卷)'은 이백이 촉(蜀)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을 표현한 시 '촉도난(蜀道難)'을 소재로 그린 회화다. 너비 8m가 넘는 커다란 화면과 다양한 색감, 치밀한 구성이 특징으로, 변화무쌍한 자연미가 구현됐다.
'김득신 필 풍속도 화첩'은 이름난 직업화가 가문 출신인 김득신이 그린 풍속화 8점으로 구성됐다. 김홍도의 화풍을 계승하면서도 인물 표정과 심리 묘사에 능했던 김득신의 개성이 잘 남아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정희의 작품은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書員嶠筆訣後)'와 '김정희 필 난맹첩(蘭盟帖)' 등 2건이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서연교필결후는 서예가 이광사가 서법에 관해 정리한 책 '서결(書訣) 전편'의 서문에 해당하는 부분을 추사(秋史) 김정희가 비판한 글이다. 그가 행서(行書·약간 흘려 쓴 서체)로 쓴 친필 원고다.
난맹첩은 김정희가 자신의 전담 장황사(裝潢師·표구 전문가)였던 유명훈에게 선물로 주려고 마련한 서화첩이다. 묵란화(墨蘭畵·수묵을 사용한 난초 그림) 16점과 글씨 7점으로 이뤄졌는데, 추사가 화첩에 묵란화만 모은 사례로는 유일하다.
이번에 함께 보물로 지정 예고된 유물에는 삼성미술관 소장 '감지은니 범망경보살계품'(紺紙銀泥梵網經菩薩戒品)과 '송조표전총류(宋朝表箋總類) 권6∼11', 원광대 박물관의 '대곡사명 감로왕도'(大谷寺銘 甘露王圖)도 있다.
감지은니 범망경보살계품은 불교 수행자가 갖춰야 할 자세와 덕목을 수록한 경전으로, 14∼15세기에 활동한 승려 대연이 만들었다. 조선시대 사경(寫經·손으로 베껴 쓴 경전) 중에는 드물게 앞쪽에 부처의 설법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 있다.
송조표전총류는 조선 태종 3년(1403)에 편찬된 책으로, 송나라의 표전(表箋·임금에게 진정하거나 나라에 길흉사가 있을 때 신하가 작성하는 글) 중 참고가 될 만한 글을 모았다. 1403년에 주조된 금속활자인 계미자로 인쇄한 점이 특징이다.
대곡사명 감로왕도는 승려화가 치상을 비롯해 13명이 1764년 그린 그림으로, 경북 의성 대곡사에 봉안돼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에 각계 의견을 수렴한 뒤 이 문화재들의 보물 지정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psh59@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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