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하고 사랑하며 커가는 열일곱 소녀…영화 '레이디 버드'

입력 2018-03-23 10:12   수정 2018-03-23 13:48

미워하고 사랑하며 커가는 열일곱 소녀…영화 '레이디 버드'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열일곱 살 고교생에게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길 기대하긴 어렵다. 세상은 성에 차지 않아 깨부수고 싶은 것들 투성이다. 머리 꼭대기의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메워줄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 마음은 곧 사랑이 된다. '레이디 버드'는 평범한 열일곱 소녀의 몇 가지 사랑에 관한 영화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의 가톨릭 고교에 다니는 레이디 버드(세어셔 로넌 분)는 촌동네 고향이 싫다. 문화예술의 중심지 뉴욕을 사랑한다. 대학은 반드시 뉴욕으로 가고 싶다. 뉴욕이 아니라도 대륙을 가로질러 일단 고향을 떠나고 싶다. 하지만 성적은 부족하고, 부모는 동부의 비싼 학비를 댈 여력이 없다. 그래도 일단 그쪽 대학에 지원하고 본다.



사사건건 간섭하는 엄마 매리언(로리 멧커프)도 싫다. 해주는 음식도 맛없다. 낡고 좁은 집도, 사는 동네도 싫다. 친구들에게는 '철로변 구린 쪽'에 산다고 푸념한다. 그래서 파란색으로 칠해진 멋진 집을 사랑한다. 나중엔 자기 집이라고 거짓말도 한다.
남자를 빼놓을 수 없다. 교내 뮤지컬 오디션에서 만난 대니(루카스 헤지스)와 잔디밭에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며 별에 이름을 붙여준다. 게다가 점찍어둔 그 파란 집, 알고보니 대니의 할머니 집이다. 사랑이 더 깊어진다.



대니와의 사랑은 마음 한구석 빈자리를 채워주는 듯하다. 하지만 왠지 모를 헛헛함도 있다. 이유를 알게 된 레이디 버드는 충격에 빠진다. 하지만 곧 그만큼 성장한다. 울다가 웃다가 짜증내며, 저밖에 모르던 철부지가 이젠 타인의 속내를 이해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세련된 도시와 집과 남자를 향한 눈앞의 사랑에 빠져 있는 사이, 알아채지 못한 진짜 사랑이 있었다. 레이디 버드는 일요일에 시간을 내 함께 집 구경을 다니고, 옷가게에서 이것저것 입어보며 티격태격하던 엄마와의 사랑이 훨씬 깊었음을 대학에 가고 나서야 깨닫는다. 스스로 지은 이름 레이디 버드를 고집하다가 부모가 지어준 이름 크리스틴을 되찾는 과정은 열일곱 소녀가 좀더 넓은 세상에서 거치는 성장통이기도 하다.



영화는 레이디 버드가 엄마와 말다툼하다가 달리는 차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으로 시작해 엄마와 고향에 대한 사랑을 깨달은 뒤의 담백한 신파로 끝난다. 성인 관객 누구나 지나왔을 그 시절을 떠올리며 공감할 만한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코드가 맞으면 폭소를 터뜨릴 유머도 끊기지 않는다.
올해 서른다섯 살인 배우 그레타 거위그는 첫 연출작인 이 영화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 출연진도 곧 할리우드를 주름잡을 기대주들로 채웠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순수한 소년으로 나오는 티머시 섈러메이가 레이디 버드의 허세 넘치는 두 번째 남자친구 카일을 연기했다. 15세 관람가. 다음달 4일 개봉.
dada@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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