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 "시진핑 지도체제 시험대 올랐다"

입력 2018-03-23 15:27  

[미중 무역전쟁] "시진핑 지도체제 시험대 올랐다"
미 NYT, 관세폭탄 직면한 '시진핑 딜레마' 지적
"싸우면 지도력 의심받고 굴복하면 '약골주석' 낙인"

(서울=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중국을 향해 관세폭탄을 던지고 중국이 보복관세로 맞받아 무역전쟁의 전운이 짙어지면서 장기집권을 노리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지도력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중국이 보호무역주의를 표방하는 첫 미국 대통령을 상대하게 되면서 시 주석이 엄청난 도전에 직면했다고 분석했다.
NYT는 시 주석이 자신을 중국을 이끄는 조타수로 격상시키고 장기집권을 위한 초석을 놓은 상황에서 미국이 중국을 중대한 전략적 라이벌로 인식하고 수십 년간 유지돼온 양국 경제관계를 재설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으로 시 주석은 늘어나는 국가 부채와 인구 고령화에 맞서 중국 경제의 급격한 성장세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에서 자칫 세계 경제를 요동치게 할 수도 있는 보복조치로 맞서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부닥쳤다고 신문은 전했다.


역대 중국 지도자들은 대미 관계를 얼마나 원만하게 유지하느냐로 지도력을 인정받았는데 무역전쟁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할 경우 시 주석의 정치적 입지가 약화하고 1인 중심체제의 정당성을 의심받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만약 시 주석이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물러설 경우 약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로 각인될 수 있고 민족주의적·반미 정서를 부채질해온 중국 정치권의 비난도 피하기 어렵게 된다.
전문가들은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항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국내에서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과시하고 동시에 중국의 도약과 세계 최강국을 향한 야심에 장애물로 작용할 전면적 무역전쟁으로부터 양국을 멀리 끌어낼 방안을 모색하려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 정치적 위기 자문기구인 유라시아 그룹의 클리프 컵천 의장은 "시 주석은 트럼프의 호전적 언사와 강력한 민족주의자라는 자신의 이미지 보호 사이의 경계에서 아주 잘 처신해왔다"고 설명했다.
NYT는 시 주석과 그의 측근들은 이제 "양국에 호혜적이었다고 주장하는 미·중 무역관계에 대해서는 분노를 표시하면서도 동시에 시 주석에 대한 찬사를 쏟아내는 변덕스러운 미국 대통령에 어떻게 반응할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의 가장 큰 불만은 자국 기업들의 손실을 감수하면서까지 미국 주도 대북제재에 동참함으로써 이미 트럼프 행정부에 상당한 성의를 보였다고 생각해왔다는 점이다.
단순히 대북제재에 동참하는 것만으로 트럼프 행정부 내 매파들을 잠재울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시 주석은 지난달 자신의 '경제책사'인 류허(劉鶴) 당시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을 워싱턴DC에 급파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의 특사로 방미한 류 주임과의 만남을 거부하는 모욕을 안긴 데 이어 방미 첫날 백악관은 중국산을 비롯한 수입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 방침을 밝혀 중국의 노력은 수포가 돼버렸다.
미 국방부 관리 출신인 마이클 필스버리 허드슨연구소 중국전략연구센터 소장은 시 주석이 중국 통상 압박에 대비해 대미 외교 전문가들에게로 눈을 돌리면서 월스트리트에 넓은 인맥을 지닌 왕치산 전 중앙기율위원회 서기를 국가부주석에, 하버드대 출신 류 주임을 부총리에 앉힌 것이라고 분석했다.
필스버리 소장은 그러나 20년 넘게 중국과의 교역관계를 중시해온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기울면서 시 주석이 미·중 무역전쟁의 소방수로 투입한 이들의 경험은 이렇다 할 도움이 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과거 중국 정부는 불공정 교역에 대한 미국 정부의 비판이 나올 때마다 중국 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미국 거대 기업들의 지지를 등에 업고 작은 양보와 추가 시정조치를 하겠다는 막연한 약속만을 내걸고 매번 위기를 잘 모면해왔다.


리커창 총리가 지난 20일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기자회견에서 "개방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하고 있다"며 중국 경제를 점차 미국산 제품과 서비스에 개방해가겠다고 약속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NYT는 이전 행정부였다면 중국 정부의 이런 제스처는 바로 미·중 협상으로 이어졌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측과 협상할 뜻이 없어 보인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중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가 불명확한 것도 시 주석이 직면한 여러 문제 가운데 하나다.
양국 대화에 정통한 소식통들은 관세폭탄 부과를 앞두고 중국 정부 관계자들이 어떤 조치를 취해야 이를 모면할 수 있을지 트럼프 행정부에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렇다 할 답변을 듣지 못했다고 NYT에 전했다.
mong0716@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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