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2013년 2월 퇴임 이후 5년 만이고,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네 번째 구속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당해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와중에 이 전 대통령마저 구속된 것은 우리 헌정사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1995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동시에 구속된 데 이어 23년 만에 다시 비슷한 장면을 지켜봐야 하는 국민 다수도 참담할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박범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2일 밤 영장을 발부하면서 "범죄의 많은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고, 피의자의 지위와 범죄의 중대성, 수사과정에 나타난 정황에 비춰 볼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검찰이 이 전 대통령에게 적용한 110억 원대 뇌물수수와 350억 원대 횡령 등 주요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의심된다고 판단한 듯하다. 이 전 대통령은 국정원특활비 수수 의혹만 인정하고 나머지 혐의는 부인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해, 법원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 전 대통령의 혐의 중에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품격이나 공인의식을 의심케 하는 내용도 적지 않다. 국회의원, 중소기업인, 종교인으로부터 각종 청탁 명목으로 뇌물을 받고, 대통령 재임 시 다스 소송비를 삼성전자가 대납하는 것을 승인한 혐의 등이 그렇다. 2007년 대선 때부터 도곡동 땅과 다스 소유설을 부인해 왔지만 1987년 다스 창업 때 자금을 대고, 다스에서 12년간 비자금을 조성·관리하며 300억 원대의 돈을 횡령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이 다스가 이 전 대통령 소유라는 결론을 내린 근거이기도 하다. 이런 혐의가 2007년 대선 직후 드러났다면 대통령 당선이 무효로 됐을 수도 있다는 게 검찰 판단이라고 한다. 이 전 대통령의 혐의 사실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에 대해 '정치보복'이라며 반발해 왔고, 그런 생각 때문인지 영장실질심사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구속영장 발부 직후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문에서 "과거 잘못된 관행을 절연하고 깨끗한 정치를 하고자 노력했지만, 오늘날 국민 눈높이에 비춰보면 미흡한 부분이 없지 않았다"면서 "누구를 원망하기보다 이 모든 것은 내 탓이라는 심정이고 자책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검찰이 뒤늦게나마 이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를 여럿 찾아내 구속까지 끌어낸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2007년 검찰 수사와 특검 수사가 흐지부지된 것은 되돌아볼 대목이다.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후보 또는 당선자와 같은 '살아있는 권력'에 면죄부를 준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이번 수사를 놓고 일각에서 제기된 '정치보복' 논란을 검찰이 자초한 측면도 없지 않다. 검찰은 앞으로 재판 때까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보강조사를 철저히 벌여 유죄를 입증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아울러 영장에 넣지 않은 혐의 사실에 대한 조사도 충실히 진행해야 한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시절의 사이버 외곽 팀 운영,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여론조작 등에 이 전 대통령이 어느 정도 관여했는지가 주요 수사대상으로 꼽힌다. 그러나 이 전 대통령 측은 재판에서 사실관계와 법리를 다퉈 혐의사실을 깨는 데 전력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변호인 접견 등 방어권을 충분히 보장해 불필요한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스스로에게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겠다는 다짐을 깊게 새긴다"고 말했다. 김 대변인이 문재인 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려 내놓은 발언이라지만 추상같이 스스로 경계해 대통령의 부정부패 고리를 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부정부패와 관련해 4명의 전직 대통령이 구속되고, 다른 전직 대통령의 친인척도 여러 명 비리로 구속된 부끄러운 역사에 마침표를 찍을 때가 됐다. 그 해법으로 대통령의 권한 분산을 거론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최근 한 여론조사에선 국민의 절반가량이 '4년 중임 대통령 중심제'를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여론을 존중하면서 대통령 권한을 현실적으로 줄이는 헌법개정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