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등에 비해 모르는 국민 많아…교육으로 국민 공감대 높이기 시급
다크투어리즘·유네스코 등재 추진…세계에 평화·인권 일깨우기 시동
(제주=연합뉴스) 김호천 기자 = 70주년을 맞아 제주4·3 희생자들의 넋을 달랠 진정한 진혼은 '제주만의 비극'을 넘어서는 것이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완전한 진상규명 작업과 피해자 및 희생자들에 대한 배·보상 확대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이제는 4·3을 제주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 그리고 나아가 세계 속에 평화와 인권을 일깨우는 소중한 상징으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 "4·3은 많은 국민이 몰라"…교육 통한 국민 공감대 제고 시급
제주4·3평화재단이 지난해 코리아리서치센터에 의뢰해 국민 1천명을 대상으로 한 4·3 인식조사 결과 68.1%가 4·3을 안다고 답했다.
현대사 주요 사건 중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안다고 한 답변이 99%로 가장 높았다. 4·3 인지율은 노근리 양민학살사건(75.7%)보다 낮았다.
단순하게 보면 10명 중 7명이 4·3을 안다고 하지만, 발생 시기와 희생자 규모 등 세부 내용을 아는 응답자는 별로 많지 않았다.
더욱이 4·3에 관심 있다(16.2%)는 응답보다 관심 없다(50.2%)는 응답이 3배 이상 높았다.
70주년을 맞아 '4·3 전국화'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숙제를 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4·3이 무엇인가'를 알리는 교육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주도교육청은 올해 전국 교사 1천명을 대상으로 4·3평화인권교육 직무연수를 시작한다. 10년간 직무연수 목표는 교사 1만명이다.
다른 지방 수학여행단이 제주를 찾을 때 4·3 체험을 하도록 권유하고, 4·3평화재단의 협조를 받아 해설사를 지원한다.
이석문 도교육감은 "제주4·3은 한국 현대사만이 아닌 세계적으로도 비극적인 역사"라며 "4·3을 70년 전의 역사로 그칠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재이자 희망의 미래로 승화시켜야 하고, 그 중심에 4·3평화인권교육이 있다"고 강조했다.
◇ 교황 '70주년 4·3 메시지' 주목…유네스코 세계기록 등재도 추진
남한 단독 선거를 둘러싼 좌우 갈등이 4·3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4·3 비극의 바탕에는 동서 진영 간 냉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1999년 당시 제주 4·3 연구소 강창일 소장은 세미나 주제발표를 통해 "제주4.3은 한민족 사상 최대의 양민학살사건이자 동서냉전 체제기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개입된 세계사적 사건이었다"며 "진상규명은 인류사적 차원에서 인권과 평화의 운동으로 승화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측면에서 제주도도 70주년을 맞아 4·3을 전 세계에 널리 알려 평화와 인권을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인류의 뜻깊은 자산으로 삼기 위한 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도교육청은 오는 11월 30일부터 12월 1일까지 예정된 제주교육 국제심포지엄의 주제를 '4·3과 평화, 인권'으로 정했다. 4·3과 평화·인권을 주제로 한 기조강연과 발표, 토론, 4·3 역사기행, 평화·인권 나눔방 등을 진행한다.
제주도도 4·3 70주년을 맞아 4·3과 관련된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사업을 본격 추진 중이다. 2021년 등재가 목표로, 4·3희생자 재판기록물, 군·경 기록, 미군정 기록, 무장대 기록 등이 대상이다.
여기에 전 세계인의 정신적 지주라 할 수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4·3 70주년을 맞아 발표할 예정인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위로 메시지도 세계인들에게 4·3을 알릴 소중한 기회로 평가된다.
천주교 제주교구 4·3 70주년 특별위원회가 주한 교황청 대사관을 통해 교황에게 청원 편지를 보낸 데 대해 교황이 응한 것이다. 교황의 4·3 메시지 발표는 이번이 처음이다.
◇ "아우슈비츠 수용소처럼 4·3 다크투어리즘 개발해야"
4·3의 아픔을 우리 국민과 세계인에게 더 많이 알리기 위한 이른바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 개발 필요성도 제기된다.
다크투어리즘은 전쟁이나 학살 등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여행을 뜻한다. 대표적으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나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거제 포로수용소 등이 있다.
더 많은 사람이 다녀갈수록 아픈 역사에 대한 인식과 공감이 더 커질 수 있다.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도 올해 도내 관광안내사와 여행상품 기획자들을 대상으로 '다크투어리즘 상품개발 교육강좌'를 진행한다.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에까지 그 이름을 알려가고 있는 제주 올레길 곳곳에서 4·3 학살과 사라진 마을 등을 만날 수 있다는 점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1978년 소설 '순이 삼촌'으로 금기시되던 제주 4·3을 처음 수면 위로 끌어올린 소설가 현기영은 최근 '제주의 소리' 인터뷰에서 말했다.
"다크투어리즘, 이것이야말로 제주에 해야 할 게 아닌가. 밝은 풍경만 보여줄 게 아니라 그 배후의 음습한 그늘에 깃들어 있는 4·3에 대한 슬픔. 이런 것도 관광대상이 되어야 한다. (관광이) 평화에 이바지해야겠다."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년 평화의 섬으로 명명된 제주. 4·3 70주년을 계기로 대한민국을 넘어 인류 전체의 평화의 섬으로 제대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지혜와 노력이 절실하다.
kh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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