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향 공동위촉작 '다중 우주론' 아시아 초연…"음악 구조로 은하 표현"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그 유명한 베토벤 교향곡 5번도 과연 청중들이 처음부터 굉장히 좋다고 느꼈을까요. 현대음악 감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번 반복해서 듣고 음악 구조나 어법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헝가리 출신의 현대음악 거장 페테르 외트뵈시(74)는 어렵게만 느껴지는 현대음악도 익히고 친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이처럼 말했다.
실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이 1808년 12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됐을 때 청중들의 반응은 오늘날과 달리 싸늘했다. 악보가 출판될 즈음이 돼서야 이 교향곡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고, 끊임없이 연주되고 해석되는 과정에서 '교향곡의 대명사'란 지위를 획득했다.
지난 26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내 서울시향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음악을 제2의 언어"로 규정했다. "특정 언어를 말하거나 듣기 위해서는 그 언어를 계속 접해야 하듯 현대음악도 자꾸 접하고 익숙해지면 즐길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버르토크와 리게티의 계보를 잇는 동시대 주요 작곡가이면서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등을 진두지휘하는 지휘자로 활약하고 있다.
서울시향이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부다페스트 콘서트홀 등 세계적인 음악 단체들과 함께 그에게 공동으로 위촉한 신작 '다중 우주론' 아시아 초연을 위해 두 번째로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음악을 "한 시대의 거울"이자 "삶의 일부"로 인식했다.
"시대적 상황이나 흐름에 따라 음악은 변화해 왔습니다. 중세시대의 음악, 바로크 시대의 음악, 고전·낭만 시대의 음악 등으로 그 모습은 계속 바뀌었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음악은 결국 우리 시대의 삶을 반영하는 언어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현대 관객들은 현대음악을 듣지 않고 여전히 고전·낭만 음악을 좋아한다. 어렵고 난해하다는 인상이 강한 탓에 현대음악 연주회장 객석은 휑하기 일쑤다.
그는 이번에 참여하는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시리즈 '아르스 노바'가 적은 유료 관객 수 등으로 비판받는다는 점도 이미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그러나 "음악을 돈이 되는지나 듣는 사람들의 숫자로 평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음악은 엔터테인먼트'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현대음악에 대한 비판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음악은 '기능'으로 판단해선 안 됩니다. 음악은 우리 삶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오는 30일 오후 8시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아르스 노바Ⅱ-관현악 콘서트'를 이끌며 자신이 작곡한 '다중 우주론'을 소개한다.
악기들과 악기 군을 무대 곳곳에 나누어 파격적으로 배치하거나 전자장치를 사용함으로써 음악 홀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특히 오르간의 소리는 무대 뒷면을 통해 나오게 하고, 해먼드 오르간(전기오르간의 일종)은 확성을 통해 객석에서 무대로 흐르게 해 음향적인 조화를 꾀했다.
서울시향은 이 곡에 대해 '미지의 우주 공간을 날아다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외트뵈시는 "관객들이 그런 느낌을 받으면 좋겠지만, 관객들이 객석에 앉아있어야지 떠다니면 위험하다"며 농담을 건넸다.
"오케스트라 사운드를 두 오르간 사이에 배치해 관객들이 여러 악기 소리에 둘러싸인 느낌을 받게 하고 싶었어요. 악기 배치를 독특하게 했는데 각 악기 군은 각각의 은하를 상징합니다. 우주 영화 음악처럼 만들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음악적 구조로 우주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sj997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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