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참사 100일] ① 29명 목숨 앗아간 안전불감증…이제는 끝내자

입력 2018-03-29 08:01  

[제천참사 100일] ① 29명 목숨 앗아간 안전불감증…이제는 끝내자
소방점검 규정 대폭 손질…소방차 진입 막는 불법주차 강제 조처
"규정 준수·안전점검 생활화하는 시민의식 개선 절실" 한목소리

(청주=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주먹구구식 시설공사와 소방점검, 소방차의 진입을 막은 불법주차 차량, 소방 지휘관들의 부실 대처 논란….
오는 30일로 발생 100일째를 맞는, 29명의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 불감증이 한꺼번에 곪아 터진 인재(人災)였다.
이 가운데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된 대응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엄청난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이지만 이번 참사를 교훈 삼아 사회 전반에 걸쳐 존재하는 허술한 안전망을 보완하기 위해 제도 개선 움직임이 나타나는 건 긍정적인 변화다.
제도 보완을 위한 관계기관의 지속적인 관심과 함께 시민들의 자발적인 안전의식 개선은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다.

참사가 발생한 스포츠센터는 불이 나기 한 달 전인 지난해 11월 말 민간업체의 소방점검에서 불량 소방시설이 숱하게 적발됐다.
지적 사항이 무려 29개 항목, 66곳에 달했다. 작게는 소화기 불량에서 크게는 화재 감지기 이상, 스프링클러 고장, 방화 셔터·배연창 작동 불량 등이 망라됐다.
제천소방서는 그러나 이보다 앞선 같은 해 1월 특별 점검을 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판정을 내렸다.
소방서 점검 때 불량시설을 적발했더라면, 혹은 불이 나기 전 민간업체의 검사에서 발견된 불량시설을 소방서에 즉시 보고해 바로잡았거나 건물주가 서둘러 정비했더라면 이번 참사를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소방시설 점검 후 30일 이내에만 보고서를 제출하면 되는 느슨한 규정이었다. 점검업체는 스포츠센터 소방시설 불량을 파악하고도 참사 발생 때까지 소방서에 보고서를 내지 않았다.
소방당국은 이처럼 허술하게 방치됐던 소방점검 규정을 대대적으로 손질하고 나섰다.
우선 소방점검 때 중대 위험요인이 포착되면 즉시 소방서에 보고하도록 소방시설법을 정비하기로 했다.
이를 위반하면 지금처럼 경고 처분을 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첫 적발 때부터 자격정지 처분을 내린다.
비상구 폐쇄 등 다중이용시설의 중대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영업정지 처분하고, 사상자가 발생하면 최고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처벌을 강화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사전 통보 후 표본조사 식으로 했던 소방서 특별조사는 연중 예고 없는 불시단속 방식으로 전환된다.

제천 화재 당시 소방차의 진입을 막았던 불법주차 차량처럼 긴급출동에 장애가 되는 차량을 강제로 치울 방법도 생겼다.
소방당국은 개정된 소방기본법이 시행되는 오는 6월 27일부터 장애가 되는 주·정차 차량 유리창을 깬 뒤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어 옮기든, 소방차로 밀어내든 현장 상황에 맞게 강제 처분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적법 차량에 한해 손실을 보상하는 방안은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다중 이용시설 밀집지역이나 소방차 진입 곤란 지역을 주·정차 금지구역으로 지정해 위반 시 벌금을 최대 500만원까지 올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소방당국이 추진하는 이런 개선 방안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안전에 대한 시민의식 전환이 우선돼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제천 참사 이후 지난 1월 22일부터 2월 9일까지 3주간 충북도 소방본부가 도내 요양병원, 노인의료복지시설, 전통시장, 대형마트, 영화관, 터미널 등 283개소를 특별 소방점검한 결과 35%인 99개소가 무더기로 불량 판정을 받았다.
29명이 숨지는 대형 참사를 겪었는데도 3곳 중 1곳 꼴로 안전문제를 방치한 채 외면한 것이다.

민방위의 날인 지난 21일 제천 참사 이후 처음으로 전국에서 실시한 화재 대피 훈련에서는 '실전처럼'이라는 말을 무색할 정도로 관계기관 중심의 보여주기식 훈련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참사를 겪은 제천에서조차 민방위 훈련용으로 영화 상영관을 빌려 자율방재단을 동원, 시나리오에 의한 훈련을 해 빈축을 샀다.
한 소방 관련 전문가는 "미비한 제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하지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람이 얼마나 일을 제대로 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나랑은 상관없다는 안일한 자세에서 벗어나 안전의식을 생활화는 노력이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jeonch@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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