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한미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서 '환율 개입에 관한 투명성을 높인다'는 환율 협상을 패키지로 다루었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논란은 한미 FTA 협상 결과 발표 때 환율 문제를 전혀 언급하지 않은 한국과 달리 미국이 FTA 개정 협상 결과와 환율 협상 결과를 '하나의 성과'로 발표하면서 불거졌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28일(현지시간) '미국의 새 무역정책과 국가안보를 위한 한국 정부와의 협상 성과'라는 제목의 보도자료에서 (협상의) 4가지 성과 중의 하나가 '환율합의(Currency Agreement)'라고 밝혔다. 로이터 통신도 전날 미국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한미 재무당국이 '양국 FTA 협상의 부속합의'로 원화의 평가절하를 억제하기 위해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관련 투명성을 확대하는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보도했다. 환율 개입 투명성 제고 합의가 마치 FTA 개정 협상의 '부속합의'로 잘못 해석될 수도 있는 내용이다. 이 때문에 정부가 FTA 협상에서 환율 문제를 합의해놓고도 일부러 감추지 않았느냐는 '이면 합의설'이 나오기도 했다.
정부는 '환율 협의'는 FTA 개정 협상과는 별개라고 일축했다. 기획재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29일 "한미 FTA 협상 결과 발표 과정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킨 데 대해 미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환율은 양자협상으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미국이 올해 초부터 환율을 FTA 협상에 연계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결코 받아들일 수 없어 강력히 거부했다"고 강조했다. USTR은 보도자료에서 "무역과 투자의 공평한 경쟁의 장을 촉진하기 위해 환율조작을 금지하는 확고한 조항에 대한 합의(양해각서)가 마무리되고 있다. 미 재무부와 한국 기재부가 환율에 대한 논의를 이끌고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도 비슷한 내용의 보도자료를 냈다. 우리 정부 당국자의 강한 어조로 볼 때 환율 문제가 USTR의 발표나 외신보도처럼 FTA '부속합의' 수준으로 논의됐을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미국 CNBC 방송에서 "철강 관세, 환율, FTA 개정 등 세 분야에서의 합의는 '독립적'이지만, 한미 통상관계를 정의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세 분야의 협상이 함께 타결된 것은 역사적이며, 그 결과가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환율 문제를 FTA 협상의 성과로 포장했을 공산이 크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환율은 엄청난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 적자 개선을 위한 중요한 변수다. 상대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면 미국의 적자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주요 교역국의 환율조작 여부에 민감하게 집착하는 이유다. 더욱이 미국은 다음 달 15일께 환율보고서를 발표한다. 우리 정부는 이를 앞두고 미국 및 국제통화기금(IMF)과 협의 중이라고 한다. 환율 개입의 투명성을 높이는 문제도 이 협의 과정에서 논의된 것 같다. 미 재무부는 매년 4월, 10월 두 차례에 걸쳐 환율보고서를 내는데 한국은 지난해 10월 보고서에서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됐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4월 보고서에서는 환율조작국으로 지목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정부는 환율 투명성 제고 협상과 관련해 외환시장 개입 내용을 시차를 두고 공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미국이 중요한 협상 결과를 놓고 오해를 부를 만한 발표를 한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미국은 환율을 큰 틀 안에서 통상의 문제로 보고 한미 재무당국 사이에서 별개로 진행되는 환율 협상 결과를 FTA 협상 성과의 하나로 묶었을 개연성이 크다. 어쨌든 우리 정부가 강력히 항의할 정도로 오해가 빚어진 이상 미국은 결자해지 차원에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자국의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치열한 협상을 벌여온 상대국을 논란에 휘말리게 하는 건 비판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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